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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급 회담 연기시킨 北, 中을 지렛대 삼으려는 美 견제… 트럼프 “서두르지 않는다” 장기전 재확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7일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AP연합뉴스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북미 고위급 회담을 연기시킨 쪽은 북한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돌연한 연기는 북미관계에서 중국을 지렛대로 삼으려는 미국을 견제하려는 의도인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은 단순한 일정 조율상의 문제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면서도 “서두르지 않겠다”고 응수해 북미간 신경전이 계속되는 양상이다.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고위급 회담을 북한이 취소시켰다”고 말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7일 전했다. 로버트 팔라디노 국무부 부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 ‘한밤중에 회담 연기를 발표한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대해 “우리가 해당 정보를 확인하자마자 가능한 빨리 공개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말해 북한 측이 회담을 취소시킨 정황을 시사했다. 전날 고위급 회담 참석을 위해 뉴욕행 비행기편을 예약했던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은 공항에 나타나지 않았고,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중간선거 직후인 7일 0시께 회담이 연기된 사실을 공지했다. 팔라디노 부대변인은 회담 일정이 연기된 배경에 대해 “일정은 항상 바뀐다”며 “순전히 일정 상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단지 그 문제다”고 말했다. 그는 계속된 질문에 “타이밍”이란 말을 거듭하면서 “전적으로 일정을 잡는 우리의 능력에 관한 문제다. 그게 전부다”고 거듭 말했다. 그는 “이것(회담 연기)은 일정을 잡는 문제이며 그 외의 모든 것은 전적으로 본궤도에 있다”며 북미간 이상 기류 설에 선을 그었다.

북한이 회담을 연기시킨 이유로 미국이 북미 고위급 회담 직후인 9일 중국과의 외교ㆍ국방 장관간 2+2 대화를 잇따라 잡은 것이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의 한 전문가는 “미국이 중국을 통해 북한을 컨트롤하려는 모습을 보인 것이 북한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국이 중국과의 2+2 대화에서 북한에 대한 제재 압박 강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자 북한이 반발했을 것이란 얘기다. 다른 소식통은 “북한은 미국의 생각과 달리, 북미 회담에 중국이 끼어드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일정 문제뿐만 아니라 여전히 제재 문제에 대한 북미간 힘겨루기도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국은 중국을 통해 북한에 대한 제재 압박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지만, 북한은 핵개발 재개를 의미하는 병진 노선 부활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거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고위급 회담 일정을 다시 잡을 계획이라고 거듭 밝혀 북미 대화가 재개될 전망이지만, 제재 문제에 대한 북미간 힘겨루기로 협상이 난항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11ㆍ6 중간선거 결과와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북미 협상에 대해 “우리는 서두르지 않는다. 제재는 유지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취할 때까지는 제재 키를 쥐면서 장기전을 불사하겠다는 뜻을 재차 확인한 것이다. 그는 “나는 제재들을 해제하고 싶다. 하지만 그들 역시 호응을 해야 한다. 쌍방향(two-way street)이어야 한다”며 북한 비핵화 조치를 전제로 달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2차 정상회담에 대해선 “내년 초 언젠가 만날 것”이라며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뜻도 밝혔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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