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상황 치닫는 ‘예멘의 생명선’ 호데이다 항구

입력
2018.11.08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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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30일 내 휴전 협정 맺자” 압박 불구

무력충돌 오히려 격화… 사상자 급증 우려

5일 예멘 정부군이 후티반군에 대한 군사작전 수행을 위해 ‘예멘의 생명선’ 호데이다 항구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5일 예멘 정부군이 후티반군에 대한 군사작전 수행을 위해 ‘예멘의 생명선’ 호데이다 항구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예멘 내전 당사자들이 30일 안에 휴전 협정을 맺길 바란다”고 밝혔다. 예멘 정부군과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아랍연합군, 그리고 반대편의 후티반군 및 이란 등에게 평화 협상 시작을 촉구한 것이다. 예멘 내전에서 사우디에 병력과 무기, 정보 등을 대거 지원해 온 미국의 이런 제안은 다소 뜻밖이었다. 국제사회의 비난을 회피하기 위해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사우디의 현 상황을 예멘 내전 종식의 ‘카드’로 쓰는 것뿐이라는 의심도 일었지만, 어쨌든 3년 이상의 내전으로 지친 예멘인들로선 분명 반길 수밖에 없는 소식이었다.

그러나 사우디 연합군의 공세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특히 후티반군의 핵심 거점이자 ‘예멘의 생명선’으로 불리는 서부의 항구 도시 호데이다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식량의 90%를 수입에 의존하는 예멘에서 호데이다는 2015년 내전 발발 이전 수입품 대부분이 들어오는 관문이었고, 지금도 인도주의 지원 물품의 80%가 유입되는 통로다.

7일(현지시간) CNN방송은 최근 며칠간 호데이다에 가해진 사우디 연합군의 공습이 400차례에 달했다면서 “미국의 평화 협상 요청 이후, 호데이다 지역에서의 무력 충돌이 더욱 격화했다”고 보도했다. BBC방송도 “지난 토요일(3일)에만 200건의 공습이 있었고, 이달 초 정부군의 지상공격 강화 이후 150명 이상이 숨졌다”고 전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민간인 거주 지역에도 100건 이상의 공습이 가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리즈 그랑드 유엔 인도주의 조정관은 “수개월 만에 호데이다에서 가장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중”이라고 말했다.

연합군의 호데이다 공격은 지난 6월 시작됐다. 이들은 도시 남부 교외지역과 공항 등을 조기에 장악했지만, 도심 한가운데까진 진입하진 않았다. 반군 저격병과 지뢰가 곳곳에 숨어 있는 탓도 있으나, 이 곳의 기반 시설이 파괴되면 “기근 심화로 향후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국제사회의 경고 탓도 컸다. 실제로 내전 기간 중 연합군의 호데이다 봉쇄는 예멘 인구(2,800만명) 절반을 위협하는 대기근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하필 휴전 협상 분위기가 조성되는 중에 폭력이 확산되는 역설이 빚어지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이제는 병원마저 위험한 상황이다. 지난 6일 도시 남부의 ‘알 타우라’ 병원 인근에서 전투가 벌어지자 병원 임원은 “의료진과 환자들도 폭탄 공격, 총격에 노출됐다”고 우려했다. 유니세프는 “병원에 입원한 어린이 59명의 생명도 위협받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후티반군도 방어 차원에서 다른 병원 옥상에 저격병들을 배치했는데, 그 결과 병원 자체가 공격 타깃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멘 분석가인 히샴 알오메이시는 “우리는 항상 호데이다를 한계선(red-line)이라고 여기고 그 곳에서의 군사작전에 반대했지만, 연합군이 이를 넘어섰다”고 비판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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