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문학상 후보작] 낯설고도 낯익은… 부조리한 풍경을 소환

입력
2018.11.08 04:4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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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최은미 ‘아홉번째 파도’ 

제51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 진출작인 '아홉번째 파도'를 쓴 최은미 작가. 문학동네 제공
제51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 진출작인 '아홉번째 파도'를 쓴 최은미 작가. 문학동네 제공

 

 <9> 최은미 ‘아홉번째 파도’ 

‘아홉번째 파도’ 는 최은미가 ‘척주’란 제목으로 한 계간지에 일 년 동안 연재한 장편소설이다. 한 인터뷰에 의하면 기존의 연재 분량에서 얼마간의 이야기를 추가했다고 하는데 연재를 따라 읽기는 했지만 어느 부분이 바뀌고 어느 부분이 새로 쓰여졌는지 그 세목까지 알기는 어렵다. 다만 다시 장편을 읽으면서 곰곰 생각하게 된 것은 왜 ‘척주’란 제목이 ‘아홉번째 파도’로 바뀌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그간 단편에서 보여주었던 최은미 고유의 디테일 직조 솜씨가 ‘아홉번째 파도’에서 여한 없이 발휘되어 척주시라는 지방의 소도시를 탁월하게 구축해낸다. 시 보건소와 약국들, 석회석 탄광과 어라항, 새천년도로와 유리골까지. 그 공간 속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인물들은 더도 덜도 아닌 딱 척주 사람들이다. 공들여 만들어 놓은 그 골목으로 서상화가 들어와 정화조의 뚜껑을 들어올리면 그 안에 갇혀 있던 열기와 악취는 물론이고 그 속에서 들끓는 장구벌레까지 현실로 불려 와 오감을 일깨운다. 땅 밑 숭숭 뚫린 동굴에 부는 바람이 앓아 누운 노인들의 신음 소리와 겹쳐지면 순간 찌든 약 냄새가 훅 끼쳐온다. 추억의 공간이고 욕망의 공간이며 미스터리한 비밀을 품고 있는 공간들은 어느 순간 하나의 기원을 가진 이들이 모여들 때 길을 터주기도 한다.

소설을 이끄는 송인화와 서상화, 윤태진은 물론이고 소설 속 많은 이들이 앓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이 신체적인 병증은 인물들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보여줄 뿐 아니라 미래를 뒤바꾸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등 이야기를 밀어붙이는 또 다른 추동력이 된다. 사람의 목숨 줄을 쥐고 흔드는 사이비교도, 그들과 유착한 권력과 비리들 그 사이에서 희생당하는 힘없는 이들의 이야기로 뻗어나간다. 등골 서늘한 것은 이것이 단지 척주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최은미가 그려낸 풍경은 문밖 풍경처럼 너무도 낯이 익다. 언제가 되었든 바로 지금 여기로 소환되어 올 풍경이다.


결말에 이르러 진실이 밝혀지지만 척주의 사람들은 이게 “이십일 세기에 가능한 일이냐”며 믿지 못한다. 그 장면은 자연스럽게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일을 목도한 이후의 시간, 최은미의 시선이 최은미의 문학이 어디에 가 닿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소설 어디에도 ‘아홉번째 파도’에 관한 친절한 설명은 없다. ‘척주’가 ‘아홉번째 파도’가 될 때 도가니 같은 욕망의 소도시 척주에 머물러 있던 무게 추는 그 안에서 저항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인물들로 기울어진다. 가장 무시무시하다는 마지막 아홉 번째 파도 앞에서 스스로를 구하려는 인간들의 노력과 정면 승부하려는 근성이 부각된다. ‘척주’에서 ‘아홉번째 파도’의 그 짧은 사이에도 최은미의 쉬지 않는 전진이 있었던 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이것은 최은미의 ‘첫’ 장편이다. 하지만 그런 놀라움도 잠시 어느 부분에 이르러 속수무책 또 울고 말았다. 다른 때도 아닌 이십일 세기에, 그것도 사랑 때문에.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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