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기간 점점 늘려… 데뷔시킨 아이돌 발 묶는 방송사들

입력
2018.11.0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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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들 가요 시장에 영향력, 중소 기획사들 출연 거부도 못해

케이블채널 Mnet의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48'을 통해 탄생해 지난달 데뷔한 그룹 아이즈원의 앨범 표지.
케이블채널 Mnet의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48'을 통해 탄생해 지난달 데뷔한 그룹 아이즈원의 앨범 표지.

1년(아이오아이)→1년 6개월(워너원)→2년 6개월(아이즈원).

아이돌그룹과 CJ E&M이 맺은 계약 기간의 변화다. 2016년부터 해를 거듭할수록 계약 기간은 늘어났다. 연예계에선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방송사가 아이돌그룹 매니지먼트 계약 기간을 늘려가며 돈벌이에 지나치게 혈안이 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오디션 프로그램 계약 기간이 늘수록 중소 가요기획사는 설 자리가 좁아진다. 방송사와의 계약 기간에 묶여 종방 후 정작 소속 가수의 활동에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종방한 종합편성채널(종편) JTBC '믹스나인' 출연자들이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으로선 한국 방송 사상 처음 데뷔에 실패해 오디션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듯했지만, 잠시였다. 지난 3일 첫 방송을 시작한 MBC 오디션 프로그램 '언더 나인틴'엔 1만 여 명의 연습생이 몰렸다.

아이돌이 되고자 하는 연습생 만 100만명이다. 데뷔의 꿈을 좇아 연습생들은 방송사 오디션 프로그램에 몰린다. 데뷔가 자체가 워낙 좁은 문인데다가 TV를 통해 더 큰 주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작용해서다. 중소 가요기획사들도 방송사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연습생을 더 내주려 한다.

가요기획사들이 성공의 신기루만 바라보며 오디션 프로그램에 연습생을 내보내려는 건 아니다. 올 초 방송된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소속 가수를 출연시킨 중소 기획사의 대표는 "해외 공연과 오디션 프로그램 방송 일정이 겹쳐 처음엔 (가수를) 출연시키지 않으려 했다"며 "하지만 방송사와의 관계 때문에 내보냈다"고 고백했다.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한 대형 기획사는 '갑'일 수 밖에 없다. 방송사는 신인 가수가 무대에 설 수 있는 음악프로그램 출연 여부를 손에 쥐고 있고, 대형 기획사는 가요시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을 거부했다가는 회사 소속 다른 연예인의 방송 출연에까지 불똥이 튈 수 있어 중소 기획사들은 협조적일 수 밖에 없다. '언더 나인틴' 데뷔 그룹의 활동 계약 기간은 12개월이고, KBS가 올 초 내보낸 오디션 프로그램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 유닛' 데뷔 그룹의 계약 기간은 최장 25개월이었다.

한국매니지먼트연합(한매연)과 한국연예제작자협회,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는 지난해 지상파 방송 3사(KBS, MBC, SBS)와 Mnet, JTBC 등에 공문을 보내 방송사의 아이돌 육성을 통한 매니지먼트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방송사들이 매니지먼트까지 하는 것은 연예 산업을 독식하려는 권력의 횡포”라는 비판이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나서도 나아진 게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 계약서엔 출연자가 지켜야 할 ‘의무’만 있고, 방송사 등 제작사가 져야 할 ‘책임’은 명시돼 있지 않다. 불공정 계약 요소가 다분하다는 뜻이다. 김헌식 동아방송대 교수는 “방송사가 기획사의 연습생을 데뷔시켜준다는 이유만으로 연습생들이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한다는 식의 계약서가 문제”라며 “계약 조건 뿐 아니라 연예 활동 관련 과잉 노동은 없는지 이번 기회에 꼼꼼히 짚어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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