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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5일 전국 상의회장단 회의에서 정부 경제정책에 다시 한번 쓴소리를 토해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함께 잘살자”며 기존 정책기조 고수를 천명했다. 장하성 정책실장은 “내년엔 소득주도 성장 등의 성과를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며 현 경제정책의 정당성을 고집하다 비판에 직면했다. 박 회장으로서는 경제 현실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원론적 정의’를 되뇌는 대통령과 장 실장의 ‘우물 안의 낙관’을 정면겨냥한 셈이 됐다.

문 대통령이 기존 경제정책 기조를 고집하는 배경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정부 출범 때부터 경제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선언하고 소득주도 성장 등 분배에 무게를 둔 정책을 펴왔다. 어느 정도 ‘잘사는 나라’가 됐으니 이제 성장의 과실이 ‘정의롭게 분배’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소명이라 여겼다. 그게 정부 업적이 될 것이고, 지지층 확대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산업 현장에서 재계를 대표해온 박 회장의 시각은 다르다.

박 회장은 “중요한 건 내리막길에 있는 경제의 큰 물꼬를 바꾸는 노력”이라며 “정말 답답하다”고 개탄했다. “예산을 써서 내년 경제지표가 조금 좋아진다고 해도 지속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요컨대 예산을 대폭 늘려 서민층에게 쓰면 분배는 개선될 수 있겠지만, 경제정책이 ‘정의’에 함몰된 사이에 성장과 번영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게 문제라는 얘기다. “정부에 규제개혁 리스트를 제출한 것만 해도 39번”이라며 ‘말뿐인 규제개혁’에 일침을 가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박 회장은 “한국 경제는 기존 산업이 경쟁력을 잃어가고, 새로운 산업을 담을 그릇도 준비되지 않았다”며 “우리 경제는 하향 추세에 빠져 있다”고 경고했다. 박회장 뿐만 아니다. 생산, 소비, 투자 등 경제지표 전반이 빠르게 악화하는 가운데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까지 잇따라 성장률 전망 수치를 하향 조정하고 나섰다. 이근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등 석학 34명은 6일 공동집필ㆍ발간한 ‘2019 한국경제 대전망’에서 내년 성장률을 잠재성장률보다도 낮은 2.5%로 전망하며 스태그플레이션과 고(高)실업을 경고하고 나섰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까지 최근엔 “혁신성장을 먼저 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며 성장 기반 마련을 위한 정책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새 경제팀에서도 기존 정책기조를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꺾지 않고 있다. 제발 절박한 우려와 경고에 귀를 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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