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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괴산 ‘숲속작은책방’ 테라스에서 책을 읽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여행길에 책은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소품이다. 꼭 자세잡고 읽어야 제 맛인가. 책이 있는 풍경은 자체로 풍요롭고, 가볍게 책갈피를 넘기는 것만으로도 여유롭다. 깊어가는 가을, 한국관광공사가 꼽은 ‘작은 책방’이 있는 여행지를 소개한다.

◇도서관이야, 놀이터야? 광양 농부네텃밭도서관

진상면의 ‘농부네텃밭도서관’은 하지만 도서관이라기보다 놀이터에 가깝다. 동화책에서 본 듯 신나는 모험 놀이터다. 주변의 모든 것이 놀잇감이다. 마당의 잔돌로 땅따먹기 하고, 텃밭 들꽃으로 꽃반지를 만들고, 야트막한 언덕에선 사계절 썰매를 탄다. 아담한 연못을 가로지르는 줄배는 최고 인기다. 감나무와 느티나무를 이은 줄을 타고 아슬아슬하게 연못을 건너는 놀이도, 마당을 가르는 미니 집라인도 즐길 수 있다. 마당 한쪽 느티나무 위에는 나무집도 지었다. 누구나 올라가서 멋진 전망을 즐기고, 나무 향이 솔솔 풍기는 아담한 방에서 하룻밤 묵을 수도 있다. 이 모든 놀이 시설은 서재환 관장의 작품이다. 어릴 적 책을 보며 한번 만들어 보고 싶었던 것들이다. 이렇게 놀다가 지칠 때쯤, 안으로 들어가 책을 읽는다. 어린이 책 수천 권이 고사리 손을 기다린다.

광양 ‘농부네텃밭도서관’에서 줄배 타기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서재환 관장이 뚝딱뚝딱 손수 지은 나무집. 한국관광공사 제공.

텃밭도서관이 문을 연 것은 약 20년 전. 지역에서 마을문고를 운영하던 서 관장이 자기 집 텃밭으로 도서관을 옮겨 오면서다. 어린이 책만 남기고 수만 권의 장서를 정리하는 대신, 마당과 연못에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시설을 만들었다. 농부네텃밭도서관은 입장료도, 놀이기구 이용료도 없다. 단 평일에 단체로 찾아오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손님에게는 2,000원씩 받는다. 입소문을 타고 방문객이 늘어나 요즘은 민박과 식당도 운영한다. 직접 농사지은 매실로 담근 장아찌와 매실청, 된장, 고추장과 농산물도 판매한다.

◇동화 같은 가정식 서점, 괴산 숲속작은책방

칠성면 미루마을에 자리한 ‘숲속작은책방’은 동화책에 등장하는 집처럼 예쁘다. 야트막한 나무 담장과 잔디가 깔린 마당이 아담하고, 분홍색 벽에 테라코타 기와를 얹은 이층집이다. 피노키오가 조각된 오두막과 해먹이 걸린 정자도 갖췄다. 데크에는 책 읽기 편한 테이블과 의자가 놓였다. 사방에 책이 빼곡한 실내는 어느 작가의 서재나 거실 같은 분위기다.

동화 속 오두막 같은 숲속작은책방 전경. 한국관광공사 제공.

숲속작은책방은 2014년 4월에 문을 열었다. 출판사에서 일하던 백창화씨는 아들을 위해 어린이 책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아들이 대학생이 되자 2011년 오랫동안 꿈꿔 온 귀촌을 실행했고, 그렇게 모은 1만권의 책으로 작은 도서관을 만들었다. 책방에는 환경과 생태, 집 짓기, 마을 만들기, 노년과 죽음에 관한 책이 많다. 판매하는 책은 대략 3,000종이다. ‘가정식 서점’이라는 특성 때문에 책을 많이 둘 수 없어 부부가 좋아하는 책 위주로 선택했다. 창가 쪽에 놓인 책이 부부가 좋아하고 추천하는 책이다. 소설을 비롯해 문학, 동화책, 그림책 등 모든 책이 신간이다. 부부가 권하는 책에는 일일이 소개 글과 감상을 써서 띠종이를 둘렀다. 군데군데 놓인 편지,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인형도 따스함을 더한다.

책방에 들어오면 반드시 책 한 권을 사야 하지만,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책방을 연 지 4년째, 입소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지난해에만 5,000여명이 다녀갔다. 침대와 책꽂이가 놓인 다락방은 북스테이로 이용한다. 57가구가 모여 사는 미루마을은 산막이옛길과 가깝다.

◇오붓한 책방에서 가을 사색, 원주의 작은 서점 셋

원주의 작은 책방에는 주인의 소박한 정성과 그윽한 커피 향이 묻어난다. ‘터득골북샵’은 출판 기획자와 동화작가 출신 내외가 2년 전에 문을 연 산골 책방이다. 터득골은 흥업면 대안리의 옛 지명으로, 책방은 흥업면에서 귀래면으로 이어지는 시골에 자리 잡고 있다. 텃밭 위 야외공간은 햇볕이 따스하고, 책방에는 나무 향이 그윽하다. 터득골북샵은 ‘마음과 닿는 책’을 지향한다. 명상과 자연 등 삶을 다독이는 서적이 많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도 있다. 직접 재배한 채소를 곁들인 브런치샌드위치와 커피, 북인도 차이티(Chai tea), 오미자차는 책의 향기를 더한다. 나무 탁자, 음식을 내는 그릇, 담에 걸린 새집에도 지인인 예술가의 손길이 서렸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열고, 월ㆍ화요일에 쉰다.

예술미 깃든 ‘터득골북샵’의 그릇 장식. 한국관광공사 제공.
판부면 ‘스몰굿씽’의 내부 공간. 한국관광공사 제공.

판부면 주택가에 자리한 ‘스몰굿씽’은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A Small Good Thing)’에서 따온 이름이다. 주인은 전직 회계사로 귀농을 꿈꾸다 원주에 정착했고, 출판사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기억을 되살려 3년 전에 서점을 열었다. 긴 탁자와 오래된 책상과 의자가 놓인 서점은 빈티지한 북카페 형식이다. 책과 바가 어우러진 공간에선 주인이 직접 내린 커피와 홍차를 맛볼 수 있다. 초기에는 독립 서적을 다뤘지만, 최근에는 취향에 따라 가볍게 읽을 만한 책을 갖췄다. 드로잉 작가와 만남, 글쓰기 워크숍 같은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열고, 화요일에 쉰다.

원주역 인근 ‘책방틔움’ 입구. 한국관광공사 제공.

원주역 인근의 ‘책방틔움’은 소장한 책의 95% 이상이 독립 출판 서적이다. 주요 고객도 홀로 책을 출판하려는 예비 작가와 동네 책방에 흥미를 느끼는 청년 애호가다. 한 달에 한 번꼴로 독립 출판물 관련 모임을 갖고, 초보 작가와 디자이너가 품앗이로 작업하기도 한다. 매달 마지막 금요일 밤엔 심야책방을 연다. 11월에는 ‘술의 인문학’을 테마로 술 토크를 진행할 예정이다. 유자차, 식혜, 쌍화차, 커피 등의 판매 수익금은 지역 청소년을 지원하는 데 쓴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문을 연다.

◇헌책방으로 떠나는 문화 여행, 대구 물레책방

‘물레책방’은 대구 동네 서점의 터줏대감이자 책을 통해 문화를 나누는 공간이다. 헌책방이지만 수험서나 일반 잡지는 없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서적이 가득한 책방에 들어서면 책방지기가 추천하는 책이 보기 좋게 펼쳐져 있다.

‘몽실언니’를 영화화한 이지상 감독과의 대화. 물레책방 제공.

물레책방은 2010년 ‘녹색평론’이 서울로 옮긴 후 장우석 대표가 그 사무실을 헌책방으로 꾸미면서 시작했다. 물레처럼 돌면서 책이 순환하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책방에는 누구나 와서 볼 수 있지만, 판매는 하지 않는 책을 모아놓은 공유 서가가 있다. 책방을 시작할 무렵, 법정의 ‘무소유’가 저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비정상적인 값에 거래되는 모습을 보면서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 공유 서가에는 장 대표가 아끼는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권정생의 ‘몽실 언니’의 각기 다른 여러 판본이 진열돼 있다. 대구 출신 문인과 지역 출판사에서 낸 책을 모아놓은 서가도 있다. 다들 ‘대구에 작가가 이렇게 많으냐’며 놀란다고 한다.

물레책방은 겉은 서점이지만, 속은 복합문화공간이다. 저자와의 북콘서트, 지역 청소년의 토론장으로 활용한다. 장 대표가 고른 다큐멘터리 영화도 상영한다. 세월호 이야기를 다룬 ‘다이빙벨’, 커피 트럭으로 여행하는 이담 작가의 ‘바람커피로드’ 등 대형 극장에서 보기 힘든 영화를 소개해왔다. 물레책방에서 진행하는 행사는 유료도 있지만, 대다수는 헌책 한 권으로 참가비를 대신한다. 행사로 모은 책은 필요한 기관에 기증해 다시 순환한다. 문화 행사 일정은 물레책방 페이스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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