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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ㆍ끝>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제51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 진출작인 '내게 무해한 사람'을 쓴 최은영 작가. 문학동네 제공
<10∙끝>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의 소설은 ‘무조건적인 따뜻함’이 아니라 ‘사려 깊고, 예민하며, 지혜로운 따뜻함’을 지닌 인물들의 아름다움을 증언한다. 그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독자들은 소설 속 인물들이 자아내는 ‘요란하지 않은 따스함’에 중독된다. 아픔을 묘사할 때조차도 친절하고 따사로운 최은영의 인물들은 우리가 저마다 힘겹게 통과해온 과거에 대한 아련한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오랫동안 나도 모르게 이런 소설을 찾아왔구나’하고. 자극적인 스펙터클과 강력한 스토리텔링을 자랑하는 미디어의 서사에 중독된 어른들은 최은영의 소설을 읽으며 마치 ‘자극의 청정구역’을 조용히 산책하는 듯한 해맑은 아우라를 느끼게 될 것이다. 아무런 인테리어 장식 없이도 아름다운 집처럼, 조미료를 전혀 치지 않고도 맛깔스러운 성찬처럼, 최은영의 소설은 꾸밈없는 강인함으로 독자들의 마음에 노크를 한다. 최은영의 소설은 설령 서로 한때 상처를 주었더라도 오래오래 서로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아주 오래 전 끝난 줄로만 알았던 슬픔을 평생 애도하고 기억할 줄 아는 ‘남보다 많이 느린 사람들’의 따사로움을 보여준다.

최은영의 소설에는 떠나가거나 헤어진 사람들의 빈자리를 오래오래 응시하며 그가 남기고 간 빈자리의 허전함을 곱씹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망설이고 서성거리고 두리번거리며, 더 효율적인 삶으로 직진하지 못하고 아주 천천히 에움길을 돌아 느릿느릿 부유한다. 그들은 눈을 크게 뜨고 귀를 깊이 기울여야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들, 튀거나 돋보이지 않을지라도 삶을 더욱 아름답게 연주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헤어진 동성 애인을 잊지 못하고 그녀가 자신에게 남긴 상처가 아니라 자신이 그에게 남긴 상처를 곱씹는 여성의 이야기, 어릴 때 자신을 키워준 숙모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삼촌의 죽음으로 이제는 ‘아무 관계도 아닌 사람’이 되었지만 사실은 자신의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소중한 사람, 의미 있는 사람으로 남아있는 숙모를 그리워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이토록 우리 가슴 속에 오랫동안 아름다운 상흔을 남긴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최은영 소설의 중심에는 너무 섬세해서 더욱 상처받는 사람들, 너무 자주 상처받아서 더욱 외롭지만, 그럼에도 생의 강인한 의지를 놓아버리지 않는 여성이 있다. 그들이 지켜온 따스함의 저편에는 삶을 견뎌온 용기와 희망, 인내와 지혜가 깃들어 있음은 물론이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더 많은 ‘파이’를 차지하지는 못하지만 삶을 더욱 향기롭게 빚어내는 법을 알고 있다. 그들이 뿜어내는 아우라는 결코 어둡거나 슬프지 않다. 최은영의 소설에는 끝내 아픔을 견뎌낸 사람들이 빚어낸 시간이 뿜어내는 희망의 향기가 있다. 최은영의 소설을 읽다 보면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굳게 닫힌 타인의 마음의 문을 향해 살그머니 노크를 하고 싶어진다. 저도 당신에게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 뜻밖의 방문을 받아주실 수 있는지요.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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