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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큰 기대를 갖지 않고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의 신간 ‘초격차’를 읽기 시작했다. 외국의 경우 기업인들의 책 중에 그런대로 읽을 만한 책들이 많지만 국내에는 간혹 재벌 회장들이 쓰는 책 말고 전문경영인들의 책 중에 좋은 내용들이 담기는 사례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솔직한 자서전 문화가 취약한 우리 출판 환경에서 그렇고 그런 책이겠거니 했는데 주변에서 점점 이 책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 손에 들었다가 단숨에 다 읽었다.

문득 2015년 가을 삼성 사장단 수요모임에 초대받아 세종대왕이 가장 좋아했다는 책, 송나라 학자 진덕수의 ‘대학연의’에 대해 강연을 했을 때가 떠올랐다. 2시간의 강연이 끝났을 때 오른쪽 앞자리에 앉은 자그마한 분이 가장 집요하게 질문을 던졌는데, 뒤에 알고 보니 권오현 회장이었다. 그때 모습을 떠올려보니 이번 책에 대한 신뢰가 더해졌다.

‘초격차’는 읽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그 메시지를 받아들이겠지만 제왕학으로서의 ‘논어’에 관심이 있는 필자로서는 당연히 현대 기업경영이 논어와 얼마나 연결되는지에 초점을 두고 읽어내려 갔다. 놀라운 것은 권 회장이 이 책 어디에서도 논어를 언급하지 않았는데도 그 내용이 고스란히 ‘논어’의 정신과 직접 연결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권 회장은 리더가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으로 진솔함(Integrity), 겸손(Humility), 무사욕(No Greed)을 강조한다. 이것은 고스란히 ‘논어’에서 공자가 군자의 덕목으로 강조한 성(誠), 겸(謙), 사무사(思無邪)와 바로 통한다.

그런데 ‘2장 조직’을 읽다가 문득 문재인 대통령이 떠올랐다. 임기가 1년 반쯤 지난 문재인정부에 대한 평균적인 평가는 대략 나온 듯하다. ‘대북 문제는 서두르고, 경제 문제는 서툴고, 사람은 좋은데 일은 별로 잘하는 것 같지 않다.’ 이런 평가는 그나마 “모든게 박근혜 탓”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눈감아주었던 임기 초반이니까 국민들이 참아넘겼지 만약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어제오늘 언론들이 고공행진을 계속했던 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도 바로 이런 문맥을 중시한 때문일 것이다.

아직 이 정부를 ‘위기’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출범 이후 처음으로 본격적인 어려움에 봉착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무엇보다 경제의 어려움이 온 나라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김앤장’이라는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정책실장 교체설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것도 그와 무관치 않다. 권 회장은 ‘2장 조직’에서 이렇게 말한다.

“조직도는 리더가 직접 짜야 합니다.”

밑에서 짜서 올리는 조직도로는 문제를 풀어갈 수 없다는 말이다. 다시 권 회장의 말이다.

“대부분의 리더들은 인사팀에서 미리 준비해준 조직도를 바탕으로 회사 운영 시스템을 결정하곤 합니다. 즉 이미 그려져 있는 조직도의 빈칸에 어떤 사람을 쓸지만 고민할 뿐, 조직도 자체를 새로 그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는 곧 리더 자신의 현재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미래의 비전이 명확할 때 가능한 일이다. 이 또한 ‘논어’에서 공자가 말했던 경사(敬事), 즉 일을 삼가며 빈틈없이 해야 한다는 것과 통하는 내용이다.

한 가지 불안은 문 대통령이 현재 우리 경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지난 1년 반과 조금도 바뀌지 않을 것임을 선언한 대통령의 1일 국회 연설을 보면 그다지 정확한 인식을 갖고 있다고 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대통령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경제분야의 인물 한두 명 바꾼다고 우리 경제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도 않다. 우리 경제를 바라보는 대통령의 시각 전환이 무엇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그래서다. 꼭 ‘초격차’의 일독을 권한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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