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배우 엄앵란이 4일 오후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신성일 씨의 빈소에서 취재진에 심경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참 수고했다, 고맙다, 미안하다.”

4일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배우 신성일씨를 항상 따라 다니는 이름이 있다. 평생의 동반자이자 영화 동지였던 배우 엄앵란(82)씨다. 신씨는 숨지기 직전 동료로 58년, 부부로 54년 인연을 이어온 엄씨에게 짧지만 강렬한 작별 인사를 남겼다.

두 사람의 ‘바늘과 실’ 관계는 1960년 시작됐다. 고인의 데뷔작 ‘로맨스 빠빠’에서 호흡을 맞추면서부터다. 엄씨는 고인의 여동생 역할을 연기했지만, 고인보다 한 살 많았고 연기 선배였다. 1956년 ‘단종애사’로 데뷔한 엄씨는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였다. 고인은 엄씨가 연기 경험이 없는 자신과 함께 연기할 때 싫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고 훗날 회고했다.

여러 영화에서 호흡을 맞추던 두 사람은 1963년 ‘배신’을 촬영하며 가까워졌다. 1964년 둘의 결혼식은 장안의 화제 중 화제였다. 서울 광진구 워커힐에서 열린 결혼식은 신랑신부의 인기 때문에 난장판 속에 치러졌다. 고인의 생전 회고에 따르면 당시 결혼식 홀 안은 양가 부모를 제외하면 모두가 모르는 사람으로 가득 찼다. 동료 영화인들이 축의금을 낼 수 조차 없었다. 당시 거금 200만원을 들인 결혼식에 답지된 축의금은 2만2,500원. 전국 소매치기들이 다 몰린 것 같았다고 고인은 회고했다.

신성일씨가 2000년 4월 대구 동구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부인 엄앵란씨와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타 커플의 화려한 탄생이었지만 결혼 생활은 평탄하지 않았다. 고인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결혼 생활”이라 할 정도였다. 두 사람은 1975년부터 사실상 별거를 시작했고 신씨는 훗날 자서전에서 외도 사실을 고백해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평생 부부 관계를 유지했다. 신씨는 아내 엄씨가 유방암으로 투병할 때 곁에서 간호했다.

4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빈소에서 만난 엄씨는 “남편은 뼛속까지 영화인”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남편은 아파서 까무러치는 순간에도 영화 얘기를 했다. 정말 가슴이 아팠다. 남편이 이렇게나 영화를 사랑하는구나, 이런 사람이 있어서 오늘날 한국영화가 존재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남편을 붙잡고 울었다”고 말했다. 엄씨가 신씨를 마지막으로 만난 건 별세 사흘 전. 엄씨는 “그 남자(신성일)는 일밖에 몰랐다. 그런 사람이라서 내가 존경했고 54년을 함께 살았다”고 말했다.

엄씨는 “남편은 대문 밖의 남자였지 집안의 남자가 아니었다”면서 “일에 미쳐서 집안 일은 나에게만 맡겼다. 그렇기에 그렇게 다양한 역할을 연기할 수 있었고, 어려운 시절에 히트작을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엄씨는 “남편은 욕심이 너무 많았다. 영화 제작도 하고, 극장을 인수했다가 날리기도 했다. 밖으로 (돈을) 가져가기만 했지 집으로 가져오지를 않았다”고도 했다.

엄씨는 “밖에서 이상한 소문이 들릴 때마다 ‘우리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동지다. 영화하는 동지다. 끝까지 전진해야 한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며 동지애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늘그막에 재미있게 살려고 했더니 (그렇게 떠났다)”라고 끝내 말끝을 흐렸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