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외교부 “위안부 합의 헌법소원 각하” 의견서 냈다

입력
2018.11.0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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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헌재에 “정치적 합의, 헌법소원 대상 아니다” 의견서… “법적 다툼 피하려 소극적 태도” 비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해 7월 경기 성남시 분당차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 빈소를 찾아 같은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손을 잡고 위로하고 있다. 성남=연합뉴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해 7월 경기 성남시 분당차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 빈소를 찾아 같은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손을 잡고 위로하고 있다. 성남=연합뉴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관련 헌법소원 재판에 대해 외교부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소송을 낼 자격이 없다는 취지의 의견을 낸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합의 당시부터 피해자들의 의견 수렴 없이 일방 체결했다는 비판을 받았던 외교부가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4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위안부 합의 위헌 확인’ 소송에 대한 외교부 답변서에 따르면, 피청구인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올해 6월 헌법재판소에 “청구인들의 기본권이 침해될 가능성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다”면서 “심판 청구를 각하해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외교부는 “심판 청구가 헌법소원 절차와 요건상 부적법하기 때문에 각하돼야 한다”면서 “위안부 문제는 정부의 정책적 노력을 통해 다루는 것이 헌법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각하는 본안 판단 이전에 소송 당사자가 재판을 청구할 자격이 없을 때 내리는 처분이다.

외교부는 위안부 합의가 헌법소원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법적 효력을 가지는 조약이 아니라 외교적 합의에 불과하기 때문에 ‘국가기관의 공권력 행사’로 볼 수 없다는 점 △외교 당국자 사이의 정치적 선언으로 인해 개별 배상청구권을 비롯한 법적 권리나 기본권이 직접 침해되지는 않는다는 점 △’이라크 파병’ 등 고도의 외교적 행위는 헌법소원 대상으로 삼을 수 없어 각하한 전례가 있는 점 등 3가지 근거를 들었다. 다만, “피해자들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는 등 절차와 내용상으로 많은 문제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했다.

일각에서는 외교부가 본격 법적 다툼을 피하기 위해 소송 각하를 주장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피해자들의 소송대리를 맡은 이상희 변호사는 “2011년 헌재가 위안부 피해자 배상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은 한국 정부의 ‘부작위(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를 위헌이라고 판단했는데도, 박근혜 정부가 2015년 합의를 통해 위안부 문제가 최종 해결됐다고 주장하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고 취한 입장을 정부가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외교적 보호권 행사 의무가 없다는 현 외교부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는 2015년 합의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사실상 무용지물이 돼 기본권 침해가 계속되는데 정부가 미온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달 30일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에서 일본 전범기업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취지로 판결을 내렸지만, 정부가 피해자들에 대한 조치 등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외교부 측은 법리 문제만 지적했다는 입장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위안부 합의는 형식상 조약이 아니라 정치적 합의로, 국민들의 권리의무를 직접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합의의 잘잘못을 떠나 법리상 헌법소원 대상은 아니라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헌법연구관 출신 변호사는 “부족하지만 정부 나름의 외교적 노력을 한 것이어서 합의 자체가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헌재는 이 사건을 중요 사건으로 판단해 전원재판부에 회부해 심리 중이다. 애초 청구인 적격을 따지는 사전심사를 통과한 상황이라, 명백하게 소송의 적법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앞서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는 일본 정부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며 위안부 문제를 합의했다. 이에 이듬해 3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인정되지 않았고, 피해자 당사자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았다” “위안부 합의는 피해자들의 재산권, 행복추구권, 알 권리, 외교적 보호를 받을 권리 등 기본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면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29명과 유족 및 생존 피해자 12명을 대리해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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