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호 엽기 갑질, 짓밟힌 이들은 왜 침묵했나

입력
2018.11.05 04:40
수정
2018.11.05 08:5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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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으로부터 폭행당한 피해자인 '위디스크' 전직 직원 강모 씨가 3일 피해자 신분 조사를 받기 위해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출석해 심경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으로부터 폭행당한 피해자인 '위디스크' 전직 직원 강모 씨가 3일 피해자 신분 조사를 받기 위해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출석해 심경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거역하기 힘든 무소불위의 힘이었을까, 정보기술(IT)업계 특유의 사내 문화였을까.’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에게 폭행을 당하는 영상에 등장하는 웹하드업체 위디스크의 전직 직원 강모씨는 3일 경찰에 출석하며 “양 회장이 법의 심판을 받게 되길 간절히 원한다“고 했다. 폭행을 당하며 영상에 찍힌 것이 2015년 4월이었으니 3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공개적으로 울분과 하소연을 밝힌 셈. 폭행뿐 아니라 동물학대, 직원들에게 마늘을 강제로 먹이고 염색을 강요하는 엽기행각 등이 잇따라 터져나오면서 양 회장의 각종 갑(甲)질과 기행이 그토록 오랜 세월 수면 아래 잠겨있다가 왜 이제서야 공론의 장에 등장하고 있는지가 미스터리라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먼저 양 회장이 ‘제왕’처럼 군림한 지배구조가 지목된다. 양 회장은 이지원인터넷서비스(위디스크)와 선한아이디(파일노리), 블루브릭, 한국미래기술을 보유한 지배기업 한국인터넷기술원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각각 회사의 대표이사는 다르지만 사실상 양 회장의 측근들로 이뤄진 바지사장에 불과하다고 업계는 귀띔한다. 업계에서 양 회장의 지배력이 공고하다 보니 웹하드업계 종사자들이 양 회장의 회사를 떠나서는 같은 직종으로 이직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다.

비정규직과 프리랜서가 많은 IT업계의 특성을 이유로 꼽는 이들도 있다. 정연아 IT노조 사무국장은 “IT업계는 고용환경이 불안정해 일상적인 폭력에 노출돼도 단결해서 싸우기보다 참고 넘어가거나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면서 “갑질이 만연해도 잘 공론화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위디스크 자체의 경직된 분위기도 거론된다. 익명을 요구한 IT업계 종사자는 “영상 속에 등장하는 직원들을 보면 모두 꼿꼿한 자세로 정장을 입고 일을 하고 있는데, 대개 ‘후드티와 청바지’로 상징되는 IT회사들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완전 다르다”고 했다.

업무 성격 자체가 불법 요소가 많다 보니 직원들 역시 암묵적으로 동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웹하드가 디지털 성범죄의 온상으로 지적돼 왔고, 근무자들 역시 불법적이라는 리스크(위험)를 감수하면서 일을 했을 것이기 때문에 떳떳하지 못하다는 내심이 비밀을 유지하도록 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이번 사건이 양 회장의 개인적인 악행에 대한 비판과 단죄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힘이 더욱 실린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양 회장이 폭력을 행사하며 활개칠 수 있던 배경에 사이버 성폭력을 통해 축적한 자본과 이를 통해 구축한 웹하드 카르텔이 있다는 사실을 웹하드업체의 근무자들 또한 모르지 않았다”며 “단순히 회장 개인의 직장 내 폭력 문제가 아닌 사이버 성폭력을 수익모델로 삼은 불법 기업에 대한 처벌로 이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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