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입력
2018.11.05 04:40
31면

스스로의 목숨을 저당 잡히고 살아가는 맹목적 삶에서 벗어나 진정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보자는 술자리에서의 호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P교수에게 그의 책과 같은 제목으로 글을 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지만 막상 말짱한 기운으로 돌아오니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만 남았다. P교수는 니체와 하이데거 등 실존철학을 연구한다. 하이데거의 책은 너무 어려워서 필독서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기 일쑤인데, 그런 하이데거의 철학을 매혹적으로 강의해 준 그의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책’으로 꼽으며 갖가지 사연을 보내온다고 한다. 지금의 삶이 녹록지 않으니 더 그럴 수도 있겠다. 독자들의 뜨거운 반향이 분에 넘친다며 겸손을 떨지만 고백하건대 그가 풀어내는 얘기를 듣다 보면 그 자리가 ‘인생 술자리’가 될 만큼 훈내가 폴폴 난다. 그 혼자 단 한 모금의 술도 삼키지 않으면서 말이다.

서양 철학자로서는 드물게 노장사상 등 동양철학에도 밝았던 하이데거는 기술문명을, 자연 전체를 효율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에너지원으로 변환시키고 남용하려는 광기 어린 ‘지배에의 의지’로 치부해 비판한다. 기술문명 자체를 송두리째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고 규정하면서 일상적으로 격차에 대한 우려에 사로잡혀 있다 보니 세간적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바쁘게 살면서도 정작 마음 밑바닥에서 이러한 삶에 대해 염증과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고 진단한다. “측정할 수 없는 것들은 경영할 수 없다.”는 경영학의 구루 피터 드러커의 말을 당연시 받아들이는 기술문명 시대의 사람들로서는 존재자들의 지배자가 아닌 존재의 파수꾼이 되라는 하이데거의 처방을 그래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세상에는 측정할 수 없는 일도 많다. BTS가 문화훈장을 받은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의 원래 무료였던 티켓을 150만원씩 주고 암표로 사는 젊은이들이나, 해외에서 열리는 골프 대회마다 매번 응원을 간다는 박성현의 골드미스 팬들은 과학적이고 계산적인 이성을 넘어선 근원적인 이성이 드러나는 경우다. 자신의 삶의 방식을 전환시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들의 팬덤은 좋아하는 대상과 지금의 나 또는 되고 싶은 나를 동일시하면서 발전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고 스스로가 평가하는 실제적 자아(real self)가 내 마음속에 있는 ‘어떤 사람이고 싶다’는 이상적 자아(ideal self)와 가까워질 때 자존감은 상승하고 멀어질수록 불안해진다. 그렇다고 되고 싶은 나를 좇아 지금의 나를 버리고 가상현실에 들어가 영원히 머물기를 바란다면 현실의 삶은 늘 무거운 짐일 수 밖에 없다. 불안과 공허함이야말로 삶이 짐이 되는 근본이유이기도 한데, 자신의 삶의 방식을 자연과 사물 등 ‘존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자신 안에 깃들게 하는’ 인간 고유의 감정을 회복하는 쪽으로 변화시켜야 고독감과 무력감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하이데거는 말한다.

세상 이치를 알아듣기 쉽게 풀어주는 내공에서 자기는 아무리 노력해도 P교수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둥 지나친 겸손이 내가 아는 유일한 결점인 K교수도 마침 술자리에 동석했었다. 그는 외국에서 문학박사를 받고서는 따로 풍수지리에서 일가를 이룬 알아주는 고수다. 산수 간에 터를 잡고, 건물을 짓고 거주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에 참여하고 그렇게 했을 때의 길흉을 따지는 행위를 풍수지리라 설파한다. 이 설명을 들으면 풍수지리야말로 유망한 분야를 찾아 회사를 세우고 핵심 성공요소를 따져 비즈니스모델을 적용해 키워나가는 스타트업의 일생을 담은 빅픽처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싶기도 하다. 그 날 술자리에서 하이데거와 풍수지리를 안주 삼아 삶이 더는 짐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호기롭게도 나는 나를 다시 창업하고 있었던 것이다.

구자갑 롯데오토리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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