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의로운 한일관계 요구한 대법 판결

입력
2018.11.05 04:40
30면

강제징용 판결 반발 일본, 태도 불변

정부, 징용피해자와 진솔한 대화해야

시민사회 제안 ‘2+2’재단 검토 필요

역사적 판결이 확정됐다. 지난주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확정 판결은 한일 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개인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했다. 그리고 불법적인 식민지 지배에서 유래하는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했다.

지금까지 한국은 식민지배가 불법적이었다고 주장해왔다. 또한 사유재산권은 국가 등 어떠한 것에 의해서도 부정될 수 없다는 것이 보편적 사고이다. 이 점을 고려하면, 대법원 판결은 아무리 피하려 해도 언젠가는 나올 수밖에 없는 지극히 논리적인 판결이었다. 이 판결로 인해 식민지배가 불법인지 합법인지 애매하게 처리하고 국가 간 합의로 개인 청구권을 포함한 모든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1965년 한일협정은 사실상 설 자리를 잃게 됐다.

어찌 보면 대법원 확정 판결은 피해자의 아픔보다는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역사문제를 봉합해 왔던 한일 양국 정부에 ‘정의로운 한일관계’를 구축하라는 사법부의 매서운 일침이다. 그건 한국 국민과 일본 진보 시민사회의 요망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일본 정부와 국민의 인식전환이 전제돼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대한 피로감, 역사수정주의, 보수화로 상징되듯이 불행하게도 일본의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다.

기실 일본 정부의 전향적 자세 전환 없이는 손해배상 판결의 원활한 집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현재 전국에는 근로정신대를 포함해 15건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후 더욱 늘어날 것이다. 손해배상 금액은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승소 확률이 높다. 일본 정부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 상태에서 모두가 손해배상 판결의 강제집행에 나설 경우, ‘정의로운 파국’만이 예견될 뿐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와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 슬기로운 해결 방안을 ‘함께’ 찾아가려 노력해야 한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등 많은 사례에서 보여주듯이, 피해자와의 긴밀한 의사소통 없는 한일 간 외교협상은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변호사연합회와 대한변협이 2010년에 제안한 바 있고, 한일 시민사회에서도 논의되고 있는 ‘2+2’ 재단은 좋은 대안일 수 있다. 독일의 ‘기억ㆍ책임ㆍ미래’ 재단을 모델로 한일 양국 정부, 관련된 한일 양국 기업이 역사화해 재단을 만들어 피해자에 대한 보상, 추모, 기념사업을 전개하자는 것이다. 개개인의 판결 집행이 아닌 별도의 약정으로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실제 피해자 및 지원 단체는 ‘일제강점 하 강제동원 피해자 인권재단 설립에 관한 법률안’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위 법률안은 강제동원 피해자와 그 유족의 손해를 배상하고 복지, 추념 사업을 추진하며, “피해에 책임이 있는 일본 정부ㆍ기업이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원 마련에 함께할 수 있도록 필요한 외교적 노력을 다할 것”을 명기하고 있다. 한국 정부 또한 2014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재단’을 만들어 기념, 추모, 복지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렇듯 한국 정부와 피해자는 공통분모를 통해 슬기로운 해결 방안을 찾아낼 수 있다. 그 바탕 위에 한국 정부는 피해자와 함께, 일본이 정의로운 한일관계를 구축하는 길에 참여하도록 인내와 끈기를 갖고 외교적 노력을 다하여야 한다.

역사는 진화하고 진보한다. 그동안 일본은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간 담화 등 이러한 진보에 동참해왔다. 또 한 번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일본 정부가 한일협정과의 정책적 일관성에만 얽매이지 말고 진보하는 역사에 동승하기를 기대한다.

한일 모두가 외치는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는 역사를 과거에 가둬두고 도외시한 채 다른 협력만 강화하자는 것이 아니다. 어느 정도의 갈등이 있을지언정 역사 화해를 지속적으로 추구하면서, 북한 비핵화 등 현안을 둘러싼 협력을 동시적으로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일 것이다.

최희식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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