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은 과도한 기본권 침해” 14년 만에 판례 뒤집어

입력
2018.11.01 18:34
수정
2018.11.01 23:59
2면

 4명 소수의견… “병역거부자 양심, 진짜인지 어떻게 구별하나” 논란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병역법 위법 관련 선고를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김명수 대법원장등 대법관들이 참석해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병역법 위법 관련 선고를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김명수 대법원장등 대법관들이 참석해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대법원이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을 이유로 입영과 집총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헌정 사상 처음으로 무죄라고 판단한 것은 헌법이 보장한 양심의 자유를 좀 더 폭넓게 적용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국가가 부여한 의무에 응하지 않는 소극적 행동까지 형사 처벌을 하는 것은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게 핵심 논리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는 1일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할 수 없다고 선고하면서 다수(대법관 9명) 의견을 통해 “헌법 19조에 명시된 양심의 자유도 법질서와 충돌할 경우 일정한 제한이 필요하지만, 기본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전제했다. 이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헌법상 국방 의무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단지 국방 의무를 구체화한 법률에서 병역의무 이행 방법으로 정한 집총이나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행위 이행을 거부한 것은 소극적 양심실현 행위”라며 “이들에게 처벌을 통해 강제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자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양심의 자유보다 헌법 37조 국방의 의무에 무게를 둔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론과 정반대다. 당시 최종영 대법원장과 대법관 10명은 “국방 의무는 국가 존립에서 가장 기본적 의무로, 특히 특수한 안보 상황을 고려하면 국방 의무보다 종교적ㆍ양심 자유가 우선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판결에는 이강국 당시 대법관만 “양심의 자유와 국방 의무가 충돌하면, 국가형벌권보다 양심의 자유가 더 보장돼야 한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판단이 대체복무제 도입 여부와 무관하다고 강조한 것도 눈길을 끈다. 대법원 다수 의견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것과 대체복무제 존부(存否)는 논리필연적 관계에 있지 않다”며 “대체복무제가 마련되지 않았다거나 도입될 가능성이 있더라도 정당한 사유가 인정된다면 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처벌규정은 합헌이지만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지난 6월 헌법재판소 결정보다 한 발 더 나간 전향적 판단이다.

[저작권 한국일보]대법원장 및 대법관별 의견 그래픽=신동준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대법원장 및 대법관별 의견 그래픽=신동준 기자

이 같은 다수 의견에 맞서 김소영ㆍ조희대ㆍ박상옥ㆍ이기택 대법관 등 4명은 “개인적 신념과 같은 주관적 사정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할 수 없다”는 반대 의견을 내놨다. 이기택 대법관은 보충의견을 통해 “다수의견은 특정 종파의 병역거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헌법이 제안하는 양심의 범위를 근거 없이 제한하고 있다”며 “양심이 진정한지 여부는 형사 재판에서 증명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조희대 대법관도 “우리 헌법은 (외세로 인해 고통받은) 참혹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국방 의무를 규정하면서 일체의 예외를 두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양심’에 대한 판단이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을 의식한 듯 검증 방안도 제시했다. 이들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은 그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해야 한다”며 “인간 내면의 양심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으니 간접사실과 정황사실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준 역시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8월30일 대법원 공개변론에서 검찰 측도 “주관적 요소인 양심을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헌법재판소가 내년 말까지를 대체복무제 도입 기한으로 명시한 터라 1년 이상의 입법 공백이 불가피해 군 복무를 둘러싼 형평성 논란 등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검찰은 이날 대법원 판결에 따라 ‘양심’의 진위를 구별하는 기준 등을 담은 후속 조치를 빠른 시일 내에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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