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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통합’ 없는 일반학교 통합교육
[저작권 한국일보]박구원기자

일반 초등학교를 보낼까 특수학교를 보낼까. 장애 아이를 둔 부모들의 가장 큰 고민이다. 일부 특수학교의 뒤숭숭한 사건이 연일 터져 나오면서 최근에는 일반학교에서의 통합교육만이 살 길이라는 엄마들의 분위기 변화가 느껴진다.

그러나 통합교육이 해답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 장애ㆍ비장애 경계 없는 통합교육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당연히 그리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통합교육에 ‘통합’은 없고 ‘특수’만 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들을 일반초등학교에 입학시켰지만 이듬해 특수학교로 전학을 시켰다.

나에게 일반학교에서의 기억은 ‘슬픔’ ‘거절’ ‘실패’ 등의 감정으로 인식되고 있다. 어느 정도냐면 일이 있어 일반학교의 특수학급들을 방문할 때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한다. 내 아들이 왜 통합교육에 실패했는지, 왜 일반인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 그 원인을 찾다 보면 진정한 통합교육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으리라. 2016년 3월부터 2017년 5월까지, 아들이 일반학교에 다녔던 1년2개월의 시간을 돌아본다.

아들은 일반학급에서 2교시, 특수학급에서 2, 3교시의 수업을 번갈아 가며 들었다. 일반학급에 있는 동안 아들은 교실 안에 홀로 떠다니는 섬 같은 존재였다. 한 교실에 모두와 함께 있지만 언제나 혼자였다. 수업을 이해하지 못했고,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되지 않았기에 모둠활동(조별 활동)에 참여할 수도 없었다. 혼자 힘으로는 과제를 할 수도 없었기에 아들의 책상은 언제나 깨끗이 비어 있었다.

아들을 데리러 가서 교실 안을 들여다보면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는 친구들과 달리 아들은 무료함을 견디기 위해 책상에 엎드려 보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하고, 연필을 씹기도 했다. 한 때는 자리 배치마저 아들의 고독감을 배가시켰다. 수업 중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들이 무료해서 자꾸 잠을 자려 하니까 결국 아들의 책상이 친구들을 바라보도록 재배치됐다. 칠판을 등진 채 앉아 친구들이라도 쳐다보면 덜 심심했기 때문이다.

2학년이 되었다. 담임이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힘들게 하는 착석에 연연하지 않고 아들의 심리적 안정감을 위해 자유로움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수업 중에 걸어 다녀도 되고, 뒤에서 거울을 보며 놀아도 된다. 다른 아이들은 안 되지만 장애인인 내 아들은 그래도 된다. 그랬더니 아들은 교실 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누워서만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는 아예 드러누워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고 통합교육이라는 게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그 상황에 이르자 특수교사가 전학을 권고한다. 미안하다면서.

“그럼 미안하지 않게 하면 되잖아요!”라는 말은 울음에 걸려 나오지 않는다. 지적장애 2급의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은 통합교육에 실패했고, 비장애가 주를 이루는 ‘학교’라는 사회로부터 거절을 당했다. 그 때 나는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아직도 가끔 자문을 한다. 그 때의 나는, 일반담임은, 특수교사는, 학교장은 과연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 장애 정도가 무거운 아이들은 그저 처음부터 특수학교에 가는 게 옳은 것이었는지.

이제 하나씩 짚어본다. 그 이유를 파고들면 ‘무늬만 통합’인 현재의 학교 현장에서 진짜 통합교육이 실현될 수 있는 방안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들이 1학년 1학기 때 ‘나홀로 섬’이 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지원 인력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말을 못한다고 의사소통까지 안 되는 건 아니다. 나는 아들과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아줌마~ 저는 동환이가 말은 못하지만 동환이의 마음은 모두 알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반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진도를 나가야 하는 교실 현장에서는 담임이 아들에게만 주의를 기울일 수가 없다. 비장애 아이들도 손이 많이 간다. 의사소통을 위해 아들만 바라보며 관찰하고 있다가는 수업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의사소통에 답답함을 느낀 아들은 점점 표현을 크게 하며 자신의 의사를 강하게 전달했다. 처음에 ‘잉잉~’하고 떼를 썼으면 다음엔 ‘으앙~’하고 울음을 터트렸고, 그래도 전달이 되지 않으면 이제 드러누워 발버둥을 치거나 옆의 친구를 공격하기도 했다.

그 모든 행위를 ‘의사소통의 문제’가 아닌 단순 ‘문제행동’으로 바라보자 그때부터 진짜 문제가 시작됐다. 일반 아이들과 격리시키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과 거리를 두어 혼자 앉아야 했고, 수업 중엔 아무것도 하질 않고 그저 사고 안치고 있으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2학기가 되어 실무사가 아들 학급에 보조 인력으로 따라 들어가자 ‘문제행동’이라고 규정지어진 것들이 확연히 줄었다. 학년 말이 되어 공익근무요원까지 추가로 배치돼 아들의 통합수업을 돕자 이제 학교생활은 평안하기까지 하다. 그들이 의사소통의 중간 창구가 되어 준 덕이다.

하지만 이것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일반학교 내의 특수학급 쪽에서만 일방적으로 노력한다고 통합이 실현되지는 않는다. 통합이 제대로 실현되려면 일반교사들의 장애 이해도 역시 높아야 한다. 그래야 그 때부터 진짜 통합다운 통합을 논의해 볼 수 있다.

보통 장애 학생들의 담임은 제비뽑기를 해서 정해진다. 운명의 제비뽑기로 한 해 동안 장애 학생을 맡게 된 교사 입장에선 일단 한숨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 장애 학생이 싫어서가 아니라 막막하기 때문이다. 어떤 태도로 대하고 어떻게 수업에 참여시켜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때론 너무 배려한다. 장애인을 같은 학생이기에 앞서 장애인으로 먼저 대하고 바라본다. 내 아들의 경우도 그랬다. 물론 장애 학생이 부담스러워 하루 종일 특수학급에 가 있기만을 바라는 일부 교사에 비하면 그마저도 고마워해야 될 일이라는 게 슬프다.

교사가 장애 학생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가를 보면서 반 친구들 역시 장애인 친구를 대하고 바라보는 태도를 그대로 배운다. 1년에 두 번 형식적으로 진행하는 ‘장애이해교육’으로 장애인식이 형성되는 게 아니다. 실생활에서 장애인 친구와 부딪히는 경험을 통해 장애에 대한 인식이 세워지고 장애인에 대한 태도가 형성된다.

그런데 통합교육에 대한 일반교사의 의지는 학교장의 영향도 크게 받는다. 진정한 통합교육이 잘 이뤄지고 있는 일부 학교 사례를 보면 무엇보다 교장의 의지가 강했다. 학교의 교육 철학과 방향을 정하는 교장 의지에 따라 학교 분위기는 180도 바뀐다. 밑에서 교사들이 통합교육을 위한 여러 안건을 내도 교장이 승인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반면 밑에 교사들은 편하게 있고 싶어도 교장이 의지를 갖고 교사들에게 통합교육 연수 등을 독려하고 실생활에서 적용할 방안들을 찾도록 하면 교사들은 따를 수밖에 없다.

아들의 경우엔 학교의 모든 공개행사에서 배제됐다. 학년말 전교생의 반별 장기자랑에서도 배제됐고, 학부모 공개수업 때도 특수학급에 내려가 일반 학부모들로부터 존재를 숨겼다. 입학식 날에도 당연히 참석하는 게 아니라 참여할지 말지 선택할 것을 제안 받았을 정도다.

지금 와 생각하니 이 부분은 학교장의 책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설령 특수교사나 일반담임의 의지가 그렇더라도 교장이 반대했다면 아들이 학교의 모든 공개행사에서 배제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반대로 아무리 교사들이 참여시키고 싶어 하더라도 교장이 다른 학부모 눈에 거슬릴(?) 장애 학생은 제외할 것을 종용했다면 힘없는 교사는 장애 학생의 부모에게 독려를 해야만 했을 것이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가. 교장도, 교사도, 특수교사를 제외한 학교 현장의 그 누구도 장애와 장애인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모르니 부담스럽고 피하고 숨기고 싶다. 교사는 학생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던데, 장애인은 특수교사의 학생일 뿐 자신들의 학생은 아니라는 생각조차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교육부에서는 통합교육 연수를 진행하고 있지만 의무사항이 아닌 권고사항이기 때문에 별 효력이 없다. 교장 등 관리자를 대상으로는 매년 3시간의 연수를 받게 하고, 일반 교사 대상으로는 최대 60시간 이상의 연수과정이 개설돼 있지만 모든 건 개인의 선택 사항이다. 받으면 좋고 안 받아도 그만이다.

통합교육, 당연히 중요하다. 절실히 필요하다. 하지만 대한민국 통합교육에선 ‘통합’이 없고 통합의 탈을 쓴 ‘특수’만 있다. 더 이상은 나처럼 일반학교에 발만 디뎌도 눈물이 터지는 엄마가 생겨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류승연 작가 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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