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병제 69년만에... 대법 "양심적 병역거부는 무죄" 첫 판결

입력
2018.11.01 16:27
수정
2018.11.01 23:42
1면

‘여호와의 증인’ 신도에 “정당한 입영 불응 사유 인정”… 대체복무 논의 급물살 탈 듯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 취지 판결을 받은 당사자 오승헌(가운데)씨가 변호인단과 함께 소감을 밝히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 취지 판결을 받은 당사자 오승헌(가운데)씨가 변호인단과 함께 소감을 밝히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병역 아니면 징역.’

종교적 신념에 반하는 집총(執銃), 평생토록 전과를 남기는 실형(實刑) 사이 선택에 내몰렸던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제3의 길’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ㆍ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승헌(34)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창원지법 형사항소부로 돌려 보냈다. 대법원이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한 병역거부를 무죄로 본 것은 1949년 병역법 제정과 함께 모든 남자들에게 병역의 의무를 부과하는 징병제가 실시된 지 69년 만에 처음이다.

[저작권 한국일보]대법원 판단 14년만에 어떻게 달라졌나 그래픽=신동준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대법원 판단 14년만에 어떻게 달라졌나 그래픽=신동준 기자

대법원은 우선 양심을 이유로 한 입영거부도 병역법이 정한 ‘정당한 입영 불응 사유’에 해당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양심 실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며 “형사처벌을 통해 집총과 군사훈련을 강제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종교ㆍ양심적 병역거부를 무죄로 본 다수의견에는 9명의 대법관이 참여했다. 4명의 대법관은 “개인적 신념이나 가치관은 정당한 입영 불응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유죄 의견을 냈다.

오씨는 2013년 7월 육군 현역병으로 입영하라는 병무청 입영통지서를 받고도 입대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돼 1ㆍ2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전국 법원에 계류된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서 무죄 선고가 이어질 전망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대법관 11(유죄)대 1(무죄)의 의견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유죄로 판단한 이후, 14년 만에 판례가 바뀐 것이다. 올 6월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 없는 병역법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대법원까지 양심적 병역거부를 무죄로 판단하면서 정치권의 대체복무 논의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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