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장 찍고 눈부신 억새 평원으로…거꾸로 가는 시간여행

입력
2018.11.02 09:00

[박준규의 기차여행ㆍ버스여행]KTX김천구미역에서 합천시티투어버스 이용하기

합천 황매산은 요즘 억새가 절정이다. 억새가 물결치는 정상 부근 능선이 가을 햇살에 눈부시다.
합천 황매산은 요즘 억새가 절정이다. 억새가 물결치는 정상 부근 능선이 가을 햇살에 눈부시다.

서울에서 합천까지는 시외버스로 4시간이 걸린다. 기차도 없어 합천 여행은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최근 한국관광공사의 관광경쟁력 개선 지원사업으로 접근이 한결 쉬워졌다.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김천구미역에 내려(1시간20분 소요) 합천시티투어버스로 환승(해인사까지 1시간20분 소요)하면 3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해인사와 해인사소리길, 합천영상테마파크와 청와대세트장, 황매산군립공원까지 당일 여행이 가능해졌다.

◇팔만대장경과 마음이 편해지는 해인사소리길

신라 애장왕 3년(802)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순응과 이정 두 대사가 건립한 해인사는 양산 통도사, 순천 송광사와 더불어 삼보(법보ㆍ불보ㆍ승보) 사찰로 통한다. 일주문에서 봉황문, 해탈문, 구광루를 차례로 지나면 대적광전이 나타난다. 금강계단, 대방광전, 법보단이라 쓴 현판은 이곳이 석가모니 부처님 대신 비로자나불(산스크리트어 ‘바이로차나’에서 온 말로서 영원한 법, 진리를 상징한다)을 모신 화엄종 도량임을 말해 준다.

해인사 대적광전.
해인사 대적광전.
해인사 장경판전.
해인사 장경판전.
해인사가 보존하고 있는 고려대장경(팔만대장경) 과 제경판.
해인사가 보존하고 있는 고려대장경(팔만대장경) 과 제경판.

조선 초기 1400년대에 지은 장경판전(藏經板殿) 건물은 화마의 참변을 피해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내부에 보관된 고려대장경(팔만대장경)과 제경판은 2007년 세계기록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해인사와 세계인의 보물이다. 불교를 숭상한 고려는 부처의 힘으로 외세를 막고자 대장경 사업을 추진한다. 현종(1009~1031년 재위) 때 시작한 초판 대장경은 고종 19년(1232)의 몽골 침입 때 불타고 말았다. 고종 23년(1236)에는 강화도에 장경도감을 설치하고 8만1,137장의 대장경을 완성했는데, 이것이 해인사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다. 현재 보존하고 있는 대장경판은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때 새긴 것까지 합해 총 8만1,352장이다. 1915년 조선총독부 집계로 8만1,258장이었지만, 2014년 ‘해인사 대장경판 중장기 종합 보존관리계획’에 따른 조사에서 8만1,352장으로 확인됐다.

무려 16년이 걸려 완성한 대장경판은 교정이 정밀하고 오자와 탈자가 없다. 각각의 경판은 가로 70cm, 세로 24cm, 두께 3cm, 무게 3.5kg으로 모두 합하면 280톤이나 된다. 경판 1장에 약 644자가 새겨졌으니 전체 5,200만이 넘는 글자가 담긴 어마어마한 경전이다. 불심과 호국정신으로 똘똘 뭉쳐 외세의 침략을 이겨내고자 한 고려인의 정성과 노력이 실로 대단하다.

해인사소리길의 홍류동 계곡.
해인사소리길의 홍류동 계곡.

경건한 마음으로 돌아본 해인사가 메인 요리라면 ‘해인사소리길’은 부담 없는 디저트다. 대장경 테마파크부터 해인사 입구까지 약 6㎞ 구간에서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자연과 함께 걷는 길이다. 마음의 울림까지 듣는다면 이것이 극락으로 연결되는 ‘행복로’가 아니겠는가. 가을 단풍이 너무 고와 흐르는 물도 붉다는 홍류동 계곡에 서면 마치 신선이 된 기분이다.(시티투어 프로그램은 해인사입구에서 길상암까지 800m를 걷는다.)

◇타임머신 타고 합천영상테마파크와 청와대세트장으로

합천영상테마파크는 국내 최대 규모(7만5,000㎡) 촬영 세트장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떠나는 추억여행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드라마 ‘에덴의 동쪽’ ‘경성스캔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택시운전사’ 등의 여러 장면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합천영상테마파크의 경성역
합천영상테마파크의 경성역
합천영상테마파크의 조선통감부 미로체험.
합천영상테마파크의 조선통감부 미로체험.

가호역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들어가면 적산가옥거리, 일제강점기 서울 소공동거리, 1970년대 종로거리를 순서대로 만난다. 건물마다 체험거리가 다채로워 그냥 지나치기 아쉽다. 수도경찰청 교도소체험, 조선통감부 미로체험, 국도극장 교복체험 등을 할 수 있고, 경성역과 버스터미널 등 개성 만점 포토존이 넘쳐난다.

영상테마파크 관람이 끝났다고 입장권을 버리면 안 된다. 테마파크 뒤편에 실제 청와대를 68% 축소해서 건축한 청와대세트장도 함께 관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2층 대통령 집무실에서 인증샷 한 컷 남기는 건 기본이다.

합천영상테마파크 인근 청와대 세트장.
합천영상테마파크 인근 청와대 세트장.

◇억새의 향연 황매산군립공원

합천 가회면과 대병면, 산청 차황면에 걸쳐 있는 황매산군립공원은 태백산맥의 마지막 봉우리이자 조선 개국을 도운 무학대사가 수도한 장소(국사당)라고 전해진다. 기암괴석과 소나무와 철쭉이 병풍처럼 펼쳐져 영남의 금강산으로도 부른다. 매년 5월에는 지리산 바래봉, 소백산과 함께 국내 3대 철쭉 군락지로 명성이 높은데, 요즘은 가을 억새가 절정이다. 능선을 뒤덮은 하얀 억새가 바람이 불 때마다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듯하다.

황매산 억새 군락을 배경으로 여행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황매산 억새 군락을 배경으로 여행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황매산 정상에서 바라본 억새 평원.
황매산 정상에서 바라본 억새 평원.

연인과 가족 여행객에게 추천하는 코스는 오토캠핑주차장에서 산불감시 초소까지다. 길이 평탄해 왕복 1시간이면 충분하다. 춤추듯 물결치는 억새가 가을 햇살에 눈부시다. 사방이 억새 군락지여서 아무데서 사진을 찍어도 작품이다. 멀리서 봐도 가까이 다가가도 장관이다.

왕복 2시간을 잡으면 황매산(1,108m) 정상까지 갈 수 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촬영지를 지나면 땀 꽤나 쏟게 되지만, 정상에서 보는 풍경으로 충분히 보상 받는다. 사방으로 지리산, 덕유산, 가야산 줄기가 산수화처럼 펼쳐진다. 가까이 보이는 합천호는 잔물결의 흐름까지 느껴질 정도다.(시티투어버스 일정으로는 정상까지 가는 게 불가능하다.)

사방이 탁 트인 황매산 정상 풍경.
사방이 탁 트인 황매산 정상 풍경.

황매산 군립공원을 마지막으로 합천 여행을 마무리한다. 기차 타고 버스 타고,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KTX와 합천시티투어버스로 즐기는 ‘거꾸로 가는 시간여행’ 상품 요금은 9만8,200원(서울역 출발 성인 기준)이며 왕복교통비ㆍ입장료ㆍ식사비ㆍ안내료를 포함하고 있다. 매일 10명 이상이면 출발한다. 예약은 053-255-0533.

박준규 기차여행 전문가 sak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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