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삼권분립 논란 자초한 민정수석

입력
2018.10.31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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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직을 하면서 선배들의 가르침 중에 하나가 집적거리는 글을 쓰지 말라는 것이다. 행간에 담아야 할 정도로 험한 시대가 아니니 비판할 일이 있으면 정면으로 하고, 독설이나 꼬아서 비판하는 글을 피하라는 얘기다. 비판을 받는 대상이 수긍하지도 않을뿐더러 기분만 나쁘게 할 따름이라는 논리다. 아프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는 글을 쓰라 했다.

최근 사법농단 사태나 특별재판부 설치 문제와 관련한 글이나 기사 링크를 페이스북에 올리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검찰의 밤샘조사를 비판한 판사를 상대로 “문제 있는 행위에 대해서는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재벌 최고위 인사에게 문자보내기, 사법농단 수사에 대한 조직옹위형 비판 등이라고 적었다가 “치사한 방법으로 지위를 이용해 겁박한다”는 반격을 당했다. 쿡 쑤시는 데 발끈한 셈이지만 조 수석은 법관과 재판 독립을 중대하게 훼손한 사법농단 사태의 주요 측면에 대해 민정수석이 관심을 표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조 수석은 찬성 입장에서 특별재판부 쟁점을 다룬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블로그 글이나 한양대 로스쿨 박찬운 교수 개인 성명 등을 페이스북에 올려서 도마에 오르내리고 있다. 사법농단이나 특별재판부와 관련한 반복적인 기사, 글 링크로 봐서 단순한 관심 표명이 아니라 프로파간다(선전)로밖에 안 보이는 기자의 눈이 이상한 것인가.

사정기관을 총괄하는 청와대 민정수석의 본령에 속하는 일이냐는 시비가 끊이지 않지만 조 수석은 개의치 않는 듯하다. 흔히 말하는 ‘어쩌다 공무원’과 ‘늘 공무원’의 자세 차이인지 모르겠다. 부연하자면 문무일 검찰총장은 지난 25일 대검찰청을 상대로 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특별재판부 설치 관련 질문에 “헌법과 법률에 따라 논의하면 합당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고, “국회에서 여러 논의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 결과를 지켜보겠다”고도 했다. ‘입법부 일이니 수사 책임자로서 가타부타 말할 입장이 아니다’는 뜻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검찰로서야 특별재판부 설치는 수사 실무 면에서 불감청 고소원(不敢請 固所願)일 것이다. 압수수색 영장 청구와 줄기각 사태가 지금껏 반복됐고, 대법원 법원행정처의 임의제출 약속마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게 검찰 불만이다. 영장 기각 사유에 죄가 되지 않는다는 투도 있었으니 같은 법 전문가로서 검찰이 격앙할 만도 하다. 영장 단계에서부터 일반적인 사건 기준보다 훨씬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법원 태도에 비춰 검찰도 향후 재판의 공정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심정이겠지만 검찰 내부망에 특별재판부와 관련해 의견 글이 딱히 올라오는 게 없다고 한다. 전례가 없는 일이라 검사들 사이에서도 견해가 엇갈린다는 소리도 들린다.

법원 행태가 혀를 차게 함에도 특별재판부 도입에 대해서는 판사 검사 변호사 법조삼륜 내에서도 위헌 시비, 또 다른 형태의 재판의 공정성 문제, 사법권 침해라는 쟁점에서 갑론을박이 오간다. 상황논리로 사법시스템을 흔드는 게 맞는 일이냐는 반대입장도 있다. 걸핏하면 특별재판부를 들먹여 법의 안정성을 해칠 게 아니냐는 것이다. 현 시스템에서 논란의 핵심인 재판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단과 방법이 없느냐는 문제는 또 다른 논쟁의 지점이 될 것이다. 어차피 특별재판부가 됐든 뭐가 됐든 헌법상 현직 법관이 재판부를 맡아야 하는 상황에서 얽히고 설킨 판사 사회에서 이념성이나 사법농단 관련자와의 연고성, 직무적 연관성 시비를 피해갈 판사가 몇이나 될지도 의문이다.

복잡한 문제를 아는지 모르는지 특별재판부 도입을 공공연히 밀고 있는 조 수석의 페이스북 정치는 당연히 청와대 뜻으로 여겨질 것이고 삼권분립 침해 시비를 피할 수 없다. 29일 국회 종합감사에서 안철상 대법원 법원행정처장도 질문에 대한 답 형식이지만 사법부 독립 침해 우려가 있다고 했다. 조 수석은 삼권분립 문제와는 무관하다고 보는 것인가.

정진황 사회부장 jhch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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