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속도’보다 중요한 ‘방향성’

입력
2018.10.30 04:40
31면

돌아보면 30대 때는 무엇이든 빨리 이루고 싶어 안달이 났었다. 나보다 더 많이 이룬 사람을 만나면 축하해 주기보다 스스로 초라함을 느끼면서 마음만 더 급해졌다. 자신을 혹사하며 빨리 달려갔지만 때로는 결과적으로 틀린 방향으로 질주한 것이 되어 다시 이를 되돌리는 데 많은 애를 먹기도 했다. 이런 고민을 하던 내게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편에 나오는 불균수지약(不龜手之藥: 손틈 방지약) 이야기는 큰 가르침과 편안함을 주었다.

양(梁)나라의 재상 혜자(惠子)는 장자에게 말했다.

“위(魏)왕은 내게 큰 박씨를 주었습니다. 이것을 심었더니 그 박은 나중에 다섯 섬 무게만큼 커졌습니다. 여기에 물을 부었더니 박이 튼튼치 않아서인지 들면 모두 부서지기에 그것을 두 쪽으로 쪼개 표주박을 만들었다오. 하지만 너무 편편하고 얕아서인지 많은 물을 담을 수 없었소이다. 아무리 큰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소용이 없으므로 나는 그것을 깨뜨려 버렸소이다.”

그러자 장자는 혜자에게 송(宋)나라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신은 정말 큰 것을 쓸 줄 모르는군요. 옛날 송나라에 손이 트지 않게 하는 약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있었소. 겨울에 물을 만져도 트지 않기에 대대손손 삯빨래를 직업으로 하였소. 마침 지나가던 나그네가 그 약방문(藥方文: 약을 만드는 처방)을 듣고 백금으로 사자고 청했더니, 송나라 사람은 가족들을 모아놓고 ‘우리 집이 대를 이어 빨래를 하면서도 돈 몇 푼 벌던 것에 불과했는데, 하루 사이에 백금을 벌게 되었으니 이 약방문을 팔기로 하자.’고 의논했고, 이래서 약방문이 팔렸답니다. 나그네는 약방문을 입수하자 당시 월(越)나라와 치열한 싸움을 하던 오(吳)나라 왕을 찾아가 약방문을 제시하며 이를 수전(水戰)에 사용하자고 설득하였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월나라와의 수전에서 항상 고전하던 오나라 왕은 그 나그네를 장군으로 임명하고, 겨울 빙판에서 월나라 군대와 수전을 벌여 월나라를 대파(大破)하였습니다. 그 나그네는 그 공을 인정받아 많은 땅을 분봉(分封)받았습니다.”

장자는 이어 말했다.

“손을 안 트게 함은 어느 쪽이나 같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그것으로 땅을 분봉받았고, 한 사람은 겨우 비단 빨래를 면함에 그쳤으니, 이는 쓰는 방법이 서로 달랐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다섯 섬 무게의 박이 있다면, 왜 커다란 술통을 만들어 허리에 차고 강호에 띄워 유유히 놀아볼 생각은 하지 못하고, 오히려 조각 난 바가지가 편편하고 낮아서 쓸모없으리라는 걱정만 하고 있는 겁니까? 당신의 마음 쓰는 것이 너무 각박하지 않습니까?”

이 이야기는 여러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바쁜 와중에도 큰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하던 내게는 ‘급하게 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내가 가진 능력과 가치를 올바른 곳에 쓰는 게 중요하다. 하루 이틀 늦어짐을 안타까워하지 말고 내 지향점을 찾는 데 더 노력하자’는 가르침을 주었다.

어릴 때는 기회가 많다. 몇 번 실패를 해도 그 과정에서 얻는 교훈이 훨씬 크다. 따라서 과감한 시도를 겁낼 필요가 없다.

그러나 중년에게는 기회가 자주 주어지지 않으며, 날려버린 기회의 대가는 클 수밖에 없다. 속도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방향성에 집중해야 하는 때이다. 방향성이 정해지면 달려야 하는 의미도 분명해지고, 어떤 속도로 누구와 함께 달려야 하는지도 자연스레 정해지리라.

공자는 나이 오십에 천명(天命)을 알았다고 했다. 오십세 전까지는 생활을 위해 본인을 희생하며 살았지만 그 이후에는 본인의 소임을 생각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십년 전 마흔이 되었을 때 맞게 된 ‘불혹(不惑)’은 참 쿨하게 다가왔는데, ‘지천명(知天命)’은 꽤나 묵직하고 심오하게 다가온다.

조우성 변호사ㆍ기업분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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