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사랑은 배우지 않아도

입력
2018.10.28 09:53
수정
2018.11.08 15:27
31면

지금 눈앞에 낯선 물체가 놓여 있다. 당신은 이를 파악하기로 판단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즉시 손을 뻗어 그 물체를 만지면서 감각할 것이다. 손의 말단은 인체에서 가장 쉽게 뻗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감각을 가장 예민하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과학 시간에 한 번쯤 해 보았을 실험이 있다. 일정한 거리를 둔 바늘 두 개를 손과 등판에 각각 찔러보는 것이다. 두 개의 위치가 명민하게 파악되는 거리는 당연히 손 쪽이 압도적으로 가깝다. 반면 등은 멀리 벌려야만 두 곳의 감각을 구별할 수 있다.

이는 손이 직접 감각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손과 연결된 뇌가 감각을 느끼고 있음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하나 해 본다. 과연 손과 연결된 뇌의 영역이 등과 연결된 뇌의 영역보다 더 민감하고 예민하기에 둘의 감각이 다른 것일까. 일단 그렇지 않다. 만약 그렇다면 뇌의 단위 영역 당 감각 능력이 불균질할 것이고, 나아가 한정된 공간 안에서 뇌의 기능을 효율적으로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손과 연결된 뇌의 영역이 다른 부위와 연결된 영역보다 넓기에 더 민감할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여기서 또 질문이 있다. 뇌와 인체의 표면을 서로 전부 대칭시켜 어느 부위의 뇌 영역이 가장 넓은지, 즉 어디가 가장 민감한지 알아내고, 이를 가시적인 지도로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지난 세기의 신경외과 의사 팬필드가 이 발상을 처음으로 실험에 옮겼다. 놀랍게도 살아있는 뇌에 직접 자극을 줘 대칭되는 부위를 수기로 표시하는 방식이었다. 이 작업을 반복한 그는 마침내 뇌에 덧그린 지도를 완성했는데, 이것이 일명 ‘감각 호문쿨루스’이다. 이 지도는 민감한 부위일수록 인체의 부위가 넓게 표시되고 둔감한 부위일수록 좁게 표시된다. 그는 이 지도를 바탕으로 인간의 형상도 만들어냈다. 해당 부위가 민감할수록 크게 강조하고, 둔감할수록 작게 축소한 인체 모형이다.

두 개의 결과물은 인체의 가장 민감한 부위를 직관적으로 볼 수 있다. 기괴해보이는 이 인체의 몸통과 팔, 다리는 형편없이 마른 반면 손은 커다랗고 입술은 두툼하며 거대한 혀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인체가 손, 입술, 혀에 배정한 감각신경은 전체 감각신경의 절반이 넘는다. 다른 부위의 면적을 고려하자면, 인간은 해당 부위로 세상을 감각하기 위해 창조된 존재로 보일 정도다.

우리는 여기서 한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처음으로 연인을 만났던 감격스러운 순간이다. 사랑하는 연인을 앞에 두고, 우리는 그를 더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한다. 그게 바로, 슬며시 그의 손을 잡아보는 일이다. 손과 손이 맞닿는 순간, 우리의 머릿속은 연인에 대한 감각으로 충만해진다. 우리의 손은 조밀한 감각신경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우리가 시도하는 행위는, 그렇다. 서로의 입술을 맞대는 일이다.

그 순간 또한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 사랑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알려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우리는 마음이 시켜 연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갠다. 정신이 아찔해지고 아련해지며 구름 위로 떠오른 것 같고 모든 감각과 감정이 상대방에게 쏠린 것 같다. 뇌의 다른 부분은 검게 막힌 것 같고, 오로지 그 사람을 느끼는 것 외에는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는 이렇게 설명된다. 우리 몸은 실제로 사랑을 나누기 위해 최적화되어 있다. 뇌는 모든 신경이 집중되어 있는 입술과 손으로, 기대감으로 부풀어 마주 서 있는 연인을 느껴야 한다고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입술과 입술이 맞닿은 짜릿하고 황홀한 순간에, 우리는 과학적으로, 어떠한 잡념도 들지 못할 정도로 뇌를 깡그리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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