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은 정의로울 것”이라던 문 대통령, 국회 무시 논란

입력
2018.10.25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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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 비준에 야당 반발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9월 평양공동선언'과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심의, 의결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9월 평양공동선언'과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심의, 의결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가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를 비준한 것을 두고 ‘국회 무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자유한국당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청와대와 야당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모양새를 빚고 있다. “과정은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정도를 걷는 지도자’ 이미지에도 흠집이 났다.

 ◇“상위 선언 비준 전… ‘편법’ 쓰는 지도자 이미지”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는 ‘4ㆍ27 판문점 선언’의 부속 격이다. 판문점 선언은 국회의 비준 동의를 기다리고 있다. 상위 선언의 비준 없이 하위 합의부터 비준한 것이다. 야당의 거센 반발에 비춰, 청와대는 사전에 야권에 사안의 시급함이나 의미를 설명하거나 양해를 구하는 과정이 없었던 걸로 짐작된다.

김영삼 정부 때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법적인 위헌 논란을 떠나 마치 대통령이 자기 필요에 따라 편법을 동원하는 듯한 인상을 국민에게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개적으로 밝히기 어려운 남북 간의 속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국회를 먼저 설득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했다. 청와대는 앞서 4ㆍ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때도 만찬에 국회의장과 야당 대표들은 초대하지 않아 ‘국회 패싱’ 논란을 자초했다.

윤 전 장관은 “남북 문제를 두고 특히 여야 간에 대화가 단절돼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니 청와대가 대응하면서 결과적으로 야당과 직접 맞붙는 모양새가 됐다”고 말했다. 여당이 중재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윤 전 장관은 “결국 그 부담은 대통령에게 향하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절박하다면 절박하게 설득하는 모습 보였어야” 

국회의 비준 동의가 단순히 법리적인 의미만 있는 것도 아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조약은 문서에 의한 국가 간 합의인데 북한은 국가가 아니다”라며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3조를 들어 자유한국당의 주장을 반박한 바 있다. 그러나 대의기관인 국회의 논의, 의결은 곧 여론의 동의를 얻는 절차이기도 하다. 청와대의 해명 과정은 국회의 비준 동의의 의미를 폄훼하는 듯한 인상을 줄 여지가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대통령의 지도력은 설득에서 나온다”며 “청와대가 ‘안보 협치’를 포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청와대가 (여러 논란에도 군사분야 합의서를 먼저 비준할 정도로) 그렇게 절박하다면 절박하게 행동을 해야 한다”며 “야당이 반발해도 꾸준히 설득하고 협치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야당도 반대만을 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첫날인 지난 해 5월 10일 야당들을 먼저 찾아 “국정의 동반자로 소통하겠다”며 “특히 안보, 남북 관계, 한미 동맹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수시로 야당과도 정보를 공유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윤 전 장관은 “국회의원은 입법권을 가진 국민의 대표이니, 국회가 합의하면 국민의 의사로 간주하는 것”이라며 “국회의 비준 동의가 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진보 진영에서 그간 ‘국가보안법의 근거’로 비판해온 헌법의 영토 조항을 들어 야당의 주장에 반박한 것을 두고도 논란이 있다.

청와대의 비준에 헌법 전문가들도 의구심을 표한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조약도 꼭 국가끼리 하는 게 아니다. 휴전협정 때도 북한이 당사자였다”고 지적했고, 차진아 고려대 법전원 교수도 “조약이 아니라면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처럼 신사협정 선에 그쳐도 된다는 의미냐”고 꼬집었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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