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카슈끄지 사태 확산 틈타 사우디 왕실 공격에 두 팔 걷었다

입력
2018.10.23 18:16
수정
2018.10.2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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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자지라, 왕실 연관설 연일 보도

터키도 등 뒤에서 정보 흘려

미국 CNN방송이 ‘사우디아라비아가 자말 카슈끄지 사망을 은폐하기 위해 대역을 내세웠다”고 22일 보도하면서 제시한 폐쇄회로(CC)TV 화면. 왼쪽은 이달 2일 카슈끄지가 사망 전 터키 이스탄불 내 사우디 총영사관으로 들어가는 장면이고, 오른쪽은 같은 날 사우디 요원이 카슈끄지 자켓을 입고 가짜 턱수염을 붙이는 수법으로 위장한 채 총영사관 뒷문에서 나오는 모습이다. CNN 캡처
미국 CNN방송이 ‘사우디아라비아가 자말 카슈끄지 사망을 은폐하기 위해 대역을 내세웠다”고 22일 보도하면서 제시한 폐쇄회로(CC)TV 화면. 왼쪽은 이달 2일 카슈끄지가 사망 전 터키 이스탄불 내 사우디 총영사관으로 들어가는 장면이고, 오른쪽은 같은 날 사우디 요원이 카슈끄지 자켓을 입고 가짜 턱수염을 붙이는 수법으로 위장한 채 총영사관 뒷문에서 나오는 모습이다. CNN 캡처

사우디아라비아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60)의 피살 사건이 국제사회를 뒤흔드는 메가톤급 파문으로 번진 가운데, 중동 지역 국가들 간 ‘상호 비방전’도 불이 붙고 있다. ‘이슬람의 본산’을 자처하는 역내 패권국 사우디로선 왕실 연루 가능성을 차단해야 하는 반면, 사우디와 앙숙인 카타르 같은 나라에게는 이번 사태가 사우디에 타격을 가할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카슈끄지 죽음의 실체를 ‘우발적 사망’ 또는 ‘조직적 암살’로 규정하기 위한 양측의 ‘선전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양상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사우디와 카타르 간 정보전이다. 20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카타르에 본부를 둔 아랍권 영어매체 ‘알자지라’가 이 사건의 사우디 연관설을 집요하게 보도하고 있다. 카슈끄지가 터키 내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실종된 지난 2일 이후 3주에 걸쳐 거의 24시간 내내 관련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사건 초기부터 카슈끄지 피살 의혹을 뒷받침하는 구체적 정황을 보도했고, 사우디 정부가 지난 18일 처음으로 “카슈끄지는 몸싸움 끝에 사망했다”고 공식 인정한 이후에도 “사우디는 이제 이슬람을 대표한다는 주장을 접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사우디 실세인 모하메드 빈 살만(33) 왕세자의 프로젝트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 행사에 대한 서방 경제인들의 불참을 촉구하는 웹사이트도 만들었다.

원래 사우디와 카타르는 걸프아랍국협력회의(GCC)에서 이란(시아파)에 맞섰던 ‘수니파 형제국’ 관계였다. 그러나 사우디가 지난해 6월 이란과의 우호 관계, 테러조직 지원 등을 이유로 카타르와 단교한 이후부턴 완전히 사이가 틀어졌다.

사우디는 카타르에 ‘알자지라 폐쇄’ 요구로 맞서고 있다. 사우디의 책임을 묻는 쪽으로 뉴스 프레임을 짜맞추고 있다는 주장이다. 사우디는 이런 주장을 온라인에 퍼뜨리기 위해 트위터 봇(‘트위터’와 ‘로봇’의 합성어로, 트위터에서 자동으로 글을 써서 올리는 프로그램을 일컫는 말)까지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애틀란틱카운슬 디지털포렌식 리서치랩의 벤 니모 연구원은 트위터상 ‘알자지라 폐쇄’ 요구의 96%가 ‘리트윗’이라면서 “트위터 유저들이 기괴할 정도로 현 이슈에 관심이 없다거나, 해시태그가 조작됐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WSJ는 “사우디는 왕실에 대한 긍정적 메시지 전파, 온라인상 반대의견 차단을 시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카타르가 수행하는 정보전의 배후는 터키다. 카슈끄지 살해가 일어난 나라인 만큼, 가장 많은 정보를 쥐고 있는 터키는 이를 한꺼번에 공개하는 대신 조금씩 ‘흘리고’ 있다. 실제로 사우디 왕실의 개입 흔적을 보여주는 거의 모든 보도의 출처는 ‘익명의 터키 소식통’이다.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거짓말을 무너뜨리고자 패를 감추고 있다가 적절한 때에 터뜨리는 이른바 ‘물방울(Drip-Drip)’ 수법으로 사우디 해명을 반박하는 셈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23일 집권 정의개발당(AKP) 의원총회에서 “적나라한 진실(naked truth)을 공개할 것”이라고 예고한 것도 결국 이런 정보전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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