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ㆍ담] “개념 정립도 안된 채... 가짜뉴스 처벌대책은 성급한 느낌”

입력
2018.10.18 20:0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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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는 16일 “가짜뉴스는 세계적으로 논란이 일고 있지만 일종의 민주주의의 짐으로 알고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대책을 강구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는 16일 “가짜뉴스는 세계적으로 논란이 일고 있지만 일종의 민주주의의 짐으로 알고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대책을 강구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언론학을 가르치는 전규찬(56)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와의 인터뷰는 사실 아귀가 잘 맞지 않았다. 8년째 언론단체 대표를 맡으며 엄혹했다는 이명박ㆍ박근혜 정권을 견뎌온 강단이 느껴진다고 할까, 어쨌든 최근의 가짜뉴스 규제 논란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이런 인터뷰가 기자로서는 제일 난감하다. 가짜뉴스의 심각성과 효과적인 대책을 듣고자 준비해간 질문을 그는 순순히 받아넘기듯 하지 않았다.

그를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16일 마침 박상기 법무장관이 가짜뉴스로 통칭되는 ‘허위조작정보’ 신속∙엄정 수사령을 내렸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 지시에는 허위조작정보사범이 발생할 경우 초기 단계부터 엄정한 수사체계를 구축하고 배후의 제작ㆍ유포 주도자까지 추적, 정보의 허위성이 명백하고 사안이 중대하면 고소ㆍ고발 전이라도 적극 수사, 허위성이 확인된 사례를 전파해 이를 교육ㆍ홍보ㆍ단속ㆍ모니터링ㆍ삭제 요청에 활용, 정보통신망법 규정 강화 등과 같은 삼엄한 문구들이 포함돼 있었다.

“가짜뉴스와 관련해 최근 총리 발언에 이어 법무장관도 비슷한 말을 했다”고 운을 뗐더니 전 교수는 “그랬더라고요”라며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떤 정보를 가짜뉴스라고 부를 수 있나”라고 먼저 물었다.

“가짜뉴스가 뭔지 정의하는 게 개인적으로 아주 힘들다. 사실, 개념 정의를 분명히 하려면 그 반대말과 대비해서 보는 방법이 있다. 진짜뉴스가 뭐냐는 걸 우선 따지는 거다. ‘전문 언론인이 공식 언론사를 통해 진실을 지향하기 위해 사실에 기초한 저널리즘적인 행위’ 같은 식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건 이론일 뿐, 실재가 그러한지는 의문이다. 지난 정권 때 ‘진짜뉴스’는 있었나.” 전 교수는“‘기레기’라는 유행어가 우리 사회의 그런 현실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 했다. “진짜뉴스의 정체가 불분명한 마당이니 그 반대인 가짜뉴스를 파악하기도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사실이 아니거나 사실로 확인이 불가능한 거짓된 정보의 의도적 생산과 유통’이라는 통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정부나 시민이나 언론학자나 마찬가지다.”

전 교수는 영어권에서 ‘페이크뉴스(Fake News)’라고 부르고 우리가 흔히 ‘가짜뉴스’라고 옮기는 뉴스의 시작은 1988년 미국 위스콘신주 매디슨에서 창간된 타블로이드 풍자지 ‘오니언(The Onion)’부터라고 설명했다. “리버럴한 사람들이 주류 권력에 대한 비판의 의미로 창간한 신문이다. 국내로 치면 ‘딴지일보’ 같은 건데 패러디 기사나 칼럼이 대부분이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정치와 자본이 결탁하고 정보가 조직적으로 차단된다. 주류언론은 진실을 왜곡하거나 진상을 말하지 않는 상황에서 대중들의 갖은 의혹 제기를 재치있게 대변하는 풍자적 매체다.”

처음 대학가에서 무가지로 읽히던 이 신문은 갈수록 평판을 얻어 배포 지역이 확산됐다. 2007년 동영상 뉴스를 인터넷에 전송하는 ‘오니언 뉴스 네트워크’ 사업으로까지 확대했고, 그 뉴스들의 풍자 가치를 인정 받아 2년 뒤에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언론상인 조지 포스터 피바디상까지 받았다. 지금 전세계가 가짜뉴스를 박멸 대상으로 여기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 전개다.

요즘 거론되는 가짜뉴스가 이런 풍자만을 지칭하지 않는다는 데에는 전 대표도 공감한다. “그 보다는 허위 콘텐츠, 오보, 악의적 조작, 프로파간다에 훨씬 더 가깝다. 옛날식으로 하면 ‘괴담’ ‘유언비어’ 비슷할 수도 있다. 과거 메르스 사태 때 정부가 정보를 제대로 주지 않는 바람에 공포에서 비롯된 이야기들이 난무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정권은 이를 ‘괴담’으로 지목하고 ‘유언비어 차단’에 분주했다. 물론 가짜뉴스를 유언비어와 같이 보는 것도 곤란하다. 근래의 가짜뉴스는 국가권력만 비판ㆍ겨냥하는 게 아니라 소수자나 약자도 비하하고 혐오하는, 악의적인 허위 정보의 형태를 띈다.” 그러나 이런 모습조차 “한국이 10년 사이 엄청난 혼란과 대립, 갈등을 겪고 있는 현실의 반영”이라고 그는 진단한다.

잘못된 정보, 가짜뉴스의 유통으로 피해가 생기는 것은 분명하다. 법무부가 선제 조치까지 포함해 가짜뉴스 단속의 기준으로 삼겠다고 한 과거 실형 처벌 사례로는 정보통신망법 위반, 전기통신법 위반, 공무집행방해, 업무방해, 공직선거법 위반 등이 망라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김정일과 성관계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차명계좌에 12조원이 있다.’는 등의 거짓글은 명예훼손으로 해당자에 직접 피해를 안긴다. 주가 부양을 위한 거짓 정보나 도박사이트 낚시글 등은 불특정 다수에게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이낙연 총리의 표현대로 민주주의의 “공적”이자 “공동체 파괴범”으로 볼 여지도 있다.

그러나 정부의 조치가 성급해 보이는 느낌도 없지 않다. 이번 조치의 문맥에서는 2009년 인터넷에 허위 사실을 공표했다며 검찰이 기소했다가 결국 무죄 판결이 난 미네르바 사건 같은 경우를 진지하게 검토한 흔적을 찾기 어렵다. 현 정보통신망법에는 인터넷 게시글 등에 대해 당사자가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신고할 경우 위법성 판단 없이 무조건 30일 블라인드 처리하고, 게시자의 이의제기가 없을 경우 영구삭제하는 조항이 있다.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고 문재인 대통령도 개선을 약속한 이 문제를 당국은 또 얼마나 숙고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전 대표는 “‘괴담’이 사회기강을 파괴하고 있다며 불만과 우려를 표하고 강력한 조치를 들먹인 지난 정권”을 언급하며 문제를 좀 더 넓게 볼 것을 주문했다. “가짜뉴스를 최근 갑자기 폭발한 것으로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지난 촛불집회 당시에도 나타났듯 우리 사회는 오랜 기간 진보ㆍ보수, 청년ㆍ노년층의 갈등이 커져왔다. 가짜뉴스 논란도 실은 그와 맞물린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기준을 내세워 선악을 구분하려 들고 악을 근절하겠다고 들면 상대는 그걸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갈등, 정쟁의 프레임으로만 비쳐진다. 뿌리 박힌 한국의 핵심 모순을 손쉽게 해결할 방법은 없다. 게다가 그 책임을 가짜뉴스나, 그 생산ㆍ유통에 가담하는 시민 대중에게 던진다면 결코 환대 받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가짜뉴스를 규제해야 한다고 정부가, 정치권이 나서는 데에는 이 문제가 국내만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 순풍 역할을 한다. 세계가 골머리를 앓고 있고 독일 등 선진국에서도 최대 5,000만 유로(650억원)의 벌금을 매기는 등 강력한 제재를 도입했다는 이야기가 흔히 인용되지만 전 교수는 이 또한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말한다.

“독일이 지난해부터 시행 중인 관련법은 개념도 불분명한 가짜뉴스 일반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난민 등 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을 막고, 같은 맥락에서 나치 등 상징물을 금지하기 위한 것이다. 누구나 인정하는 명백한 ‘차별’을 막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토대가 헌법이다. 그런데 지금 국내의 논의가 그런 근본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인가. 대통령과 총리가 가짜뉴스에 당하니 발끈해 강력한 대책을 내놓으라는 식은 곤란하다. 공익 운운하지만, 정권을 상대로 한 상대방의 비방, 반대진영의 프로파간다 공세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어떤 형태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시민사회와 대화하고 합의해 가며 정책을 내놔야 한다. ‘가짜뉴스’는 사실 국내 학자들이 외국 사례를 검토하며 이제 고민을 시작한 주제다. 언론단체들도 이 문제를 갖고 제대로 깊게 논의해 보지 못했다. 지난 10년간 무너진 언론과 표현의 자유, 민주주의가 완벽히 복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문제가 가장 시급하고 본질적인 문제인지 고민해야 한다. 방송통신위원회를 중심으로 신중한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치는 게 바람직하다. 거기서 만약 법제도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그때 국회나 정부가 나서도 늦지 않다. 언론학자들이나 시민단체가 정부가 연일 내놓는 가짜뉴스 관련 대책에 우려를 표시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다른 나라보다 이미 더 강력하게 제정된 현행 법제를 제대로 운용해도 문제의 상당 부분을 해소할 수 있다.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면, 예를 들어 초점이 되는 유튜브 등 인터넷 플랫폼 사업자들의 경우 해외 사례보다 미진한 부분이 있다면 국내 관련 사업자에게 그런 부분을 자율로 강화해주도록 요청한다든지, 미디어 리터러시(해독력) 교육을 확대 강화하는 그런 정도에 그치는 게 옳다.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다. 복잡하고 불명확한 문제를 ‘근절’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무리한 일이다. 문제 해결 노력의 책임도 결국은 국가가 아닌 시민이 지는 게 맞다. 그게 사회 갈등의 민주적 해결 방식이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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