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남북 공동발굴로 역사의 핏줄 다시 잇자

입력
2018.10.17 10:21
29면

“우리는 5,000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 지난달 19일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능라도 5.1경기장 연설의 한 구절이다. 네 번이나 반복된 ‘우리 민족은’으로 시작되는 이 구절은 행사에 참여했던 15만 평양시민은 물론 많은 이들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고고학을 공부하는 필자에게는 그날의 감동이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우리 민족이 5,000년을 함께 살았다는 말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논쟁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우리 민족이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이는 없을 것이다.

광복 직후 남과 북은 일제의 식민사관 극복과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밝히기 위해 발굴조사를 시작하였다. 북한은 정권수립 이전인 1945년에 평양에 조선중앙력사박물관을 건립하였고, 곧이어 원산과 개성 강계 사리원 해주 혜산 등 주요 도시에 역사박물관을 설립하였다. 동시에 웅기 송평동유적, 나진 초도유적, 온천 궁산리유적 등 대표적인 선사시대 유적을 발굴하였으며, 1963년에는 함경북도 웅기 굴포리유적 발굴조사를 통해 일제가 부정했던 한반도 구석기시대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이어지는 발굴조사를 통해 청동기시대의 존재와 신석기시대 농경의 흔적을 밝혀내는 등 한반도 선사시대에 대한 대략적인 얼개를 구성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선사시대 문화변동과 발전과정에 대해 지체성과 외부 의존성을 강조하였던 일제식민지시대의 주장을 극복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남한에서도 1946년 경주 호우총 발굴을 필두로 발굴조사가 시작되었으며, 1980년대 이후 국토개발에 따른 발굴조사의 급증으로 선사시대는 물론 문헌사료가 빈약한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들이 발굴되었다. 지난 70년간 남과 북은 발굴조사를 통한 고고학 연구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분단으로 인한 학문적 인식의 차이는 쉽게 극복하기 어려울 만큼 벌어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경제적 어려움까지 더해 발굴조사를 통한 북한의 고고학 연구는 현재까지도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지역에 대한 자료와 연구 성과의 공백으로 한반도의 고고학 연구는 섬나라 고고학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5,000년을 함께 한’우리 민족의 역사를 오롯이 밝혀내기 위해서 남과 북이 함께 노력해야 하며, 역사유적에 대한 공동발굴조사가 가장 쉬운 해결책일 수 있다.

남북관계의 변화에 따라 부침이 있기는 했지만 사실 남과 북의 공동발굴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2001년 금강산 신계사에 대한 공동조사를 시작으로 2004년 개성공단 조성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으며, 2007년부터는 개성 만월대 고려궁성에 대한 발굴조사가 시작되어 7차례나 진행되었다. 개성공단 폐쇄로 중단되었던 만월대 발굴조사가 실무적인 이유로 또다시 연기되기는 했지만 곧 8번째 공동 조사가 재개될 것이다.

최근 남북관계의 진전과 군사회담 등으로 비무장지대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반도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는 분단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역사유적의 보고이기도 하다. 경기 연천의 전곡리 구석기시대 유적과 호로고루를 비롯한 고구려 성 등 많은 유적이 비무장지대 바로 남단에 위치해 있으며, 민통선 안에서도 많은 유적이 확인되고 있다. 궁예가 세운 태봉국의 도성으로 알려진 강원 철원의 철원성은 한반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평지 도성이지만 군사분계선으로 정확히 반이 나뉘어 있어 접근조차 어려웠으나 남북이 공동으로 발굴할 수 있는 최적의 후보지 중 하나이다. 때마침 올해는 고려 건국 1,100주년이 되는 해이자 공교롭게도 삼국을 다시 통일하고 대제국을 건설하고자 후고구려를 세웠던 궁예가 사망한지 1,1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고려 건국을 기념하는 남북 공동 전시회도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만월대와 철원성의 발굴조사는 남북교류의 물꼬를 다시 트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최종택 고려대 문화유산융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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