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체제 언론인 암살 의혹에… 사우디 증시 폭락하고 사면초가

입력
2018.10.15 18:20
수정
2018.10.16 11:16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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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실종된 사우디아라비아의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쇼기.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2일 실종된 사우디아라비아의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쇼기.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사우디아라비아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쇼기(60)의 실종 사건이 국제적 파문으로 번지면서 급기야 나라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터키 영토에서 그가 사우디 요원들에게 암살됐다는 의혹이 증폭되고 미국과 유럽의 압박이 연일 거세지면서 사우디 증시가 폭락했다. 사우디의 실세 모하메드 빈 살만(33) 왕세자가 주도하는 글로벌 프로젝트인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마저 세계 유수 기업들의 불참 선언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사우디 왕실에 비판적이었던 카쇼기가 미국에서 지내며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로 활동해 온 탓에 미국과 사우디의 오랜 동맹 관계에도 균열 조짐이 일고 있다. 사우디가 국제 무대에서 궁지로 몰리고 있는 현 상황이 향후 ‘미국의 중동 정책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1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사우디 외무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어떤 (제재) 행위가 있다면 더 큰 행위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석유가 풍부한 왕국 사우디의 세계 경제에 대한 영향력은 크고 필수적”이라며 “우리 경제는 오로지 세계 경기에 의해 영향 받는다”고 강조했다. 국제사회가 사우디에 제재를 가한다면 ‘석유’를 무기로 보복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한 셈이다.

이 같은 사우디 정부의 입장은 최근 서방의 잇단 공세에 대한 정면 대응으로 보인다. 이날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3개국 외무장관은 공동 성명을 내고 “카쇼기 실종과 관련, 진실 규명을 위한 ‘신뢰할 만한 조사’가 필요하다”며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알아내야 한다”고 밝혔다. 미 상원도 사우디에 대한 고강도 제재를 검토 중이다. 마르코 루비오(공화) 상원의원은 “(사우디 왕실의 암살 배후설이 사실일 경우) 중요 동맹국이라는 이유로 사우디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미국의 도덕적 신뢰가 추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취임 이후 첫 해외 순방지로 사우디를 선택하고, 틈만 나면 빈 살만 왕세자를 칭찬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조차 태도가 바뀌고 있다. 사건 초기,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던 그는 전날 CBS방송 인터뷰에서 “(사우디 정부의 암살) 의혹이 사실이라면, ‘가혹한 처벌’이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NYT는 이날 사우디 정부 성명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 발언에 대한 불만 표출”이라며 “트럼프와 빈 살만 사이 긴장의 첫 징후로,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 해석했다. 다만 15일 오전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국왕과 통화한 트럼프 대통령은 살만 국왕이 카쇼기 실종과의 연루를 강하게 부인했으며,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사우디에 급파했다고 밝혔다.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고 있는 양국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관계기 악화하는 것만큼은 막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미국과의 갈등 조짐에 이날 사우디 리야드증권거래소의 종합주가지수는 한때 7%까지 급락했다. 이후 반등을 거쳐 3.5% 하락 수준에서 마감했지만 이달 2일 카쇼기 실종 이후 누적기준으로 하락 폭이 9%에 달한다. 경제적 피해는 이뿐만이 아니다. 수도 리야드에서 23일 개막하는 대규모 국제행사 FII도 파행 위기다. 글로벌 차량공유서비스 회사 우버의 다라 코스로샤히 최고경영자(CEO)와 바이아컴의 로버트 배키시 CEO, 세계은행 김용 총재 등에 이어 포드자동차의 빌 포드 회장,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CEO 등도 불참을 선언했다.

WSJ는 “사우디와 지역 패권 경쟁을 벌이는 터키가 이 사건을 (미국에서) 재정적 또는 정치적 양보를 끌어내는 데 활용할 수 있다”며 “미국의 중동 정책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앞서 지난 2일 카쇼기는 터키 이스탄불 사우디 영사관에 혼인 신고를 위해 들어간 이후 종적을 감췄다. 터키 현지 언론들은 정부 관리들의 발언을 인용, 그가 사우디에서 온 요원 15명에 의해 암살됐다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사우디 정부는 “카쇼기는 안전하게 나갔다”고 반박했지만, 이를 입증하는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한편 살만 사우디 국왕은 15일 검찰에 카쇼기 사건 자체수사를 지시했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 워싱턴 백악관에서 방미한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 워싱턴 백악관에서 방미한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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