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지난 10일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선동열 야구대표팀 감독. 연합뉴스

촌극으로 끝난 ‘선동열 국감’ 이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선수 구성 논란이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오지환(LG 트윈스) 선발로 촉발된 이번 사태의 본질은 ‘병역 면탈 시도’ 의혹과 이를 향한 ‘국민적 거부감’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지난 10일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 선동열 야구대표팀 전임 감독을 증인으로 출석시켰다. 선 감독은 현역 선수 시절 ‘무등산 폭격기’, ‘나고야의 태양’, ‘국보(國寶)’라는 애칭을 얻었던 한국 야구의 전설이다. 부담을 불사하고 선 감독을 불러낸 국회의원들은 의혹을 받고 있는 일부 선수를 왜 뽑았는지에 대한 추궁보다는 ‘선동열 청문회’로 변질된 논점 이탈로 역풍을 맞았다. 이 과정에서 선수들의 기록을 들먹이며 선 감독의 전문 영역으로 들어간 것이 치명적인 자충수였다. 기자 초년병 시절 한 원로 감독에게 어설픈 질문을 했다가 “500경기 이상을 본 다음에 대화하자”고 면박을 당한 적 있다. 현장 취재를 십 수년 한 기자도 감히 경기인들의 경험에 기반한 식견에 토를 달기 어려운 종목이 야구다. 의원과 보좌진이 며칠 밤을 새워 공부하고 준비한다고 해서 타율이나 평균자책점 정도의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 전문성을 공격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국회의원들의 수준 이하의 질의에 야구 기자들이 들고 일어난 것은 선 감독의 헛웃음과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

국회 국정감사에 성역은 없어야 한다는 점은 일견 동의하지만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관 업무 중 가장 시급한 감사 업무가 이미 금메달을 획득한 야구대표팀 구성 과정이었다는 점은 수긍하기 힘들다. 과연 야구가 국정의 일부분인가. 기껏 ‘야알못(야구도 알지 못하는)’을 인증하러 불렀나. 선 감독과 대표팀에 대한 평가는 국회의 몫이 아니라 그들보다 훨씬 더 야구를 지근에서 지켜 본 미디어와 1,200만 야구팬들에게 맡겨놓는 게 옳지 않았을까.

정확한 잣대나 기준 없이 시류에 편승한 국민권익위원회의 눈치 보기도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9월13일 한국청렴운동본부라는 시민 단체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지휘한 선 감독이 내야수 오지환 등을 전력에 포함한 것은 부정청탁의 결과물일 수 있다’라고 신고하자 권익위원회는 18일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화답’했다. 아시안게임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논란이 들끓어 선 감독이 궁지에 몰리던 때였다. 권익위원회의 조사 착수에 힘을 얻은 국회는 선 감독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그런데 10일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에 대한 역풍 정국으로 번지자 권익위원회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날 “선동열 감독은 공무수행 사인(민간인)'에 해당하지 않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적용대상이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관계자에 따르면 접수 직후 권익위원회 조사관이 전화를 걸어 와 “(선 감독의) 계약 관계(주체)가 어디냐”라는 정도의 1차원적인 질문 몇 마디만 던진 뒤 공무수행 범위에 해당되는지 조사를 해 봐야겠다는 말을 남긴 채 끊었다고 한다. 이후 무슨 조사를 어떻게 벌였는지 모르겠으나 법조계에서는 ‘애초에 증거도 없이 심증만으로 청탁금지법 위반 신고를 한 것을 접수한 자체가 무리수였다’고 판단하고 있다.

국회의원과 권익위원회의 ‘협업’이 무색하게도 선 감독의 범법은 누구도 입증하지 못했다. 야구대표팀 논란의 핵심은 시대정신의 변화다. 성과주의에 매몰된 대표팀 선발 기준과 방식을 바꿔달라는 게 국민적 요구다. 이 사태에 대해 국회가 할 수 있는 건 본연의 업무인 병역법 등 제도 정비다. 국정감사장을 호통 치는 수사나 재판으로 이해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에게서 이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저 “병역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만 추궁했다.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오는 23일 대한체육회 국정감사에서 다시 한번 정운찬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올해 1월 취임해 지난해 7월 선임된 선 감독이나 야구대표팀 선발과는 아무런 관계조차 없는 정 총재에겐 또 어떤 질문을 할지, 존재하지도 않는 회의록 카드를 또 꺼내 들지 궁금하다.

성환희 스포츠부 기자 hhsung@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