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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 겪은 미야기현, 올레 코스 열어
길을 통해 재난 아픔 공감할 수 있다면
한일 이해의 폭 넓히는 데도 기여할 듯

동일본 대지진의 직격탄을 맞았던 미야기현에서 최근 올레 코스가 열렸다. 제주 올레의 그 ‘올레’다. 일본은 한국의 트레킹 붐에 착안해 6년 전 남부 규슈에서 ‘올레’ 브랜드를 수입했다. 처음 4개로 시작한 규슈 올레는 일부 지역이 관광 진작 효과를 보면서 확산돼 규슈 7개 현 전체에 코스가 생겼다. 모두 21개로 원조 제주(26개)에 육박하는 숫자다. 동북 지방 미야기현이 그 성공을 눈여겨본 것이다.

이번에 개장한 2개 코스는 각각 센다이 북쪽 히가시마쓰시마와 이와테현 경계인 게센누마에 있다. 지진 당시 뉴스를 유심히 봤던 사람이라면 게센누마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을 터이다. 남쪽 미나미산리쿠, 이시노마키, 북쪽 이와테현의 리쿠젠타카타 등과 함께 쓰나미 피해지로 언론에 자주 등장한 곳이다. 히가시마쓰시마와 게센누마는 각각 인구 4만, 6만의 소도시이나 재난 당시 숨진 사람만 2,500명을 넘고 피해 가구는 3만을 헤아린다.

태평양 너른 바다를 조망하는 해안길, 파도 소리가 속삭이듯 들리는 숲길, 여유 있고 정갈한 마을길이 이어지는 코스는 올레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모자람이 없다. 하지만 제주 올레는 미야기현에 올레 브랜드를 빌려주기까지 2년 가까이 고민했다고 한다. 복구는 됐다지만 큰 지진과 쓰나미의 흔적이 남아 있는 데다 만에 하나 여행자 안전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우려는 수차례 현지 답사 과정에서 해결되었다지만 제주 올레의 허락을 얻어 코스를 연 지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찜찜해하는 대목이 있다. 코스에서 100㎞ 이상 떨어졌다고는 해도 현재진행형인 후쿠시마 원전의 영향이다. 원전 사고에 따른 방사능 오염 우려는 일본 내에도 있지만 한국에서 더 유별난 것 같기도 하다. 단편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마치 일본 전체가 방사능에 심각하게 오염됐다고 믿는 사람들이 주변에 흔하다.

국가환경방사선 자동감시망이 측정한 지난 11일 오후 서울의 방사선 수치는 0.115마이크로시버트였다. 같은 시각 히가시마쓰시마는 0.04마이크로시버트 수준이다. 둘 다 연간 피폭선량한도 1,000마이크로시버트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미야기현 근해 수산물은 방사선 검사를 거쳐 출하되고 그 수치를 인터넷에 공개한다. 그래도 일본 정부와 미야기현이 수치를 속이고 있고 그걸 모른 채 그곳에 10만 주민들이 산다고 주장하고 싶다고 한다면 그건 물론 자유다.

제주 올레는 “걷는 사람이 행복한 길, 길 위에 사는 지역민이 행복한 길”을 표방한다. 여기서 행복은 여행자의 힐링과 지역민의 경제적 혜택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행자에게 특히 올레 여행은 길에서 새롭게 타인을 알아가며 나와 남과 우리를 발견하는 과정일 수 있다. 미야기 올레를 통해 재난 지역 주민의 아픔과 용기에 공감할 수 있다면 규슈는 물론 제주를 넘어서는 올레 가치의 확장으로 평가해도 좋을 듯하다.

미야기 올레 개장 행사에 참석한 박용민 주센다이총영사는 축사에서 “한국인이 미야기 올레를 많이 찾고 동북 사람들의 한국 방문도 늘기를 바란다”며 “여행자는 그가 보는 것을 보지만 관광객은 보고자 하는 것만 본다”는 경구를 인용했다. 추리소설 ‘브라운 신부’ 시리즈로 유명한 영국 작가 길버트 체스터턴 자서전의 한 문장이다. 체스터턴은 여행에 대한 글을 많이 남겼는데 한 에세이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휴일을 이용해 여행 떠날 준비를 하던 그에게 친구가 찾아와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체스터턴은 “배터시로 갈거야. 파리, 벨포르, 하이델베르크, 프랑크푸르트를 거쳐”라고 답한다. 배터시는 그가 사는 곳이니 어이없는 대답이다. 그는 “여기서는 배터시도, 런던도, 영국도 볼 수 없다”며 “잠과 관습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진정한 여행이란 다른 나라 땅에 발 딛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라를 외국으로 여기며 돌아올 줄 아는 것이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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