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ㆍ중 이번엔 기밀 유출 산업스파이 공방

입력
2018.10.11 17:28
수정
2018.10.12 00:00
5면
미국 법무부 홈페이지에 게재된 쉬옌쥔 관련 사건 내용. 미국 법무부 홈페이지
미국 법무부 홈페이지에 게재된 쉬옌쥔 관련 사건 내용. 미국 법무부 홈페이지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 격화하면서 환율전쟁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산업스파이 논란까지 가세했다. 통상분야에서 시작해 외교ㆍ군사분야와 인권문제로까지 번진 미중 갈등이 전방위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미국 사법당국은 10일(현지시간) 미국의 항공우주기업들로부터 기밀정보를 훔치려 한 중국 국가안전부 소속 첩보원 쉬옌진을 전날 간첩행위와 산업기밀 절도 음모 등 4개 죄목으로 기소했다고 AP통신과 미국의 주요 언론들이 보도했다. 쉬옌쥔은 지난 4월 벨기에에서 체포됐으며 범죄인 인도 절차에 따라 전날 미국으로 송환됐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중국 정부의 스파이가 미국으로 송환돼 법정에 서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법원에 제출된 공소장 등에 따르면 중국 국가안전부 장쑤성 지부 제6판공실 소속 국장급 고위관료인 쉬옌진은 2013년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세계 최고의 항공기 엔진 제조사인 제너럴일렉트릭(GE) 에이비에이션 등에서 첨단기술 정보를 빼내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장쑤성 과학기술증진협회 관계자로 위장한 뒤 해당 기업 전문가들을 중국에 초청해 강연을 요청하는 등의 방식으로 첨단정보에 접근했다. 지난 4월 벨기에에서 GE 에이비에이션 직원을 만나 엔진 날개 디자인과 재료에 관한 데이터를 얻으려다 벨기에 당국에 체포됐다.

이번 사건은 미국이 무역전쟁의 핵심 원인 중 하나로 첨단기술에 대한 지식재산권 문제를 제기한 것과 관련해 주목된다. 그간 적잖은 수의 중국 산업스파이를 검거해온 미국 정부가 처음으로 구체적인 신원을 공개한 건 자신들의 대중 무역 압박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중국을 향한 경고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지난 4일 “베이징이 미국 지재권 도둑질을 끝낼 때까지 조치를 해나갈 것”이라고 한 말이 단순한 엄포가 아니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중국 정부 책임론’을 부쩍 강조했다. 빌 프리스탭 미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은 “이번 범죄인 인도는 미국을 겨냥한 경제 스파이 행위를 중국 정부가 직접 관리ㆍ감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존 데머스 법무부 차관보도 “이번 사건은 미국을 희생시켜 중국을 발전시키려는 종합적인 경제정책의 일부”라고 규정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외교부 대변인의 정례브리핑을 통해 “미국 측의 기소는 완전히 날조된 것”이라며 “미국은 중국 국민의 합법적인 권리를 보장한 가운데 이번 사안을 공정하게 처리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미중 양국 간에는 최근 환율전쟁의 먹구름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15일 공개할 환율 반기 보고서에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음을 경고한 상태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지난 9일 “중국은 인위적으로 위안화 가치를 절하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중국은 정부 관련 부처 당국자와 관영매체를 총동원해 “환율을 무역전쟁의 무기로 사용할 뜻이 전혀 없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미국이 관례를 깨고 산업스파이의 신원까지 공개하고 나선 건 지금의 미중 갈등이 단시간에 끝나지 않을 것임은 물론 양국 관계의 총체적인 재조정까지 고려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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