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국회 무능 질타한 도발적 제안 공감대 확산
정치권ㆍ관료, ‘초연결ㆍ초지능 시대’ 역행
지도층이 지속가능 신뢰사회 솔선수범해야

국회 특수활동비 논란이 한창이던 두 달 전 퇴직한 원로 언론인들이 만든 ‘자유칼럼그룹’이라는 온라인 매체에 ‘국회의원 2선까지로’라는 도발적 글이 올라왔다. 한 방송인이 선배와 ‘정치인은 왜 늙지 않는가’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 떠오른 생각을 펼친 이 글의 요지는 제목 그대로 국회의원을 두 번까지만 하도록 제한하자는 것이다. 직업으로 정치를 하면서도 출퇴근 시간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설렁설렁 일하면서도 꼬박꼬박 세비를 챙기는가 하면, 유권자의 눈총은 아랑곳 없이 특활비를 꿀꺽꿀꺽 삼키는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개탄하다 나온 결론이다. 워낙 과격한 제안이어서 공론화되지는 못했으나 적극 지지를 표시하며 당장 국민운동에 나서자는 댓글이 적잖았다.

그의 주장은 “3선 이상의 다선 의원일수록 갑질의 단맛에 빠져 민생현장에서 멀어지고 국민을 위한 입법활동을 소홀히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런 만큼 의원의 90%가 ‘파트타임 잡(부업)’으로 의정활동을 하는 스위스 연방의회 수준까지는 못간다 해도, 국회의원의 선수를 제한해 임기가 끝나면 본래 생업으로 돌아가게 해야 민생의 어려움을 자기 일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나중을 생각해서라도 본업이 제조업이면 제조업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의정활동을, 프랜차이즈 가맹주라면 본사의 갑질 등 업계 고충을 해결하는데 앞장설 것이라는 논리다. 돈벌이의 고단함과 세금의 소중함을 알아야 나라 살림도 제 주머니처럼 세밀하게 따진다는 것이다.

이 글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소상공인 수만 명이 광화문에서 최저임금 과속인상에 저항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그때 나온 외침 가운데 “평생 월급 한번 줘 보지 않고 건물 및 시설에 투자도 안 해 본 사람들이 소상공인을 사지로 내몬다”는 외식업중앙회장의 말이 단연 눈길을 끌었다. 최저임금을 급하게 올려 소득격차를 줄이고 소비-투자-성장의 선순환을 만들겠다는 취지를 반대할 사람은 없지만, 그런 정책목표를 달성하려면 자영업 생태계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충격 대비책이 먼저 이뤄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절규다. 세상 물정과 시장 생리에 어두운 정치인과 관료가 책상머리에서 이념 혹은 신념으로 그린 정책의 폐해를 애먼 약자들이 뒤집어썼다는 항변도 된다.

비슷한 시기에 민간연구소에서 에너지 전환 문제를 연구하는 후배로부터 묘한 부탁을 받았다. 수소가 미래 에너지로 자리 잡는 ‘수소 사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언론이 깨우쳐 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우리가 수소 에너지의 잠재력에 일찍 눈을 뜬 덕분에 수소연료전지차의 기술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지만 정작 국가 차원에서 2014년 ‘수소 사회’를 선언하고 에너지 전환 로드맵의 주도권을 잡은 것은 일본이라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동안 정부나 정치권에 수소 에너지의 무한 가능성을 설명하며 정책 지원을 요청했으나 한결같이 “현대차 좋은 일 시킨다는 오해를 받기 싫다”며 손사래를 쳤다고도 했다. 그래서 기댈 곳은 언론뿐이라는 하소연이다.

서로 다른 맥락의 세가지 이야기를 모은 것은 ‘졸면 죽는’ 초연결ㆍ초지능 디지털 시대에 우리 사회를 이끄는 주류층의 의식이 너무 낡고 늙어 문제만 쌓을 뿐 풀 능력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무리 놀아도 줄만 잘 잡으면 다선 중진 반열에 오르는 정치인, 발목 잡고 몽니 부리는 게 본업인 여야, 지지층만 중요한 권력, 영혼 없는 관료, 대안 없이 목소리만 높이는 학계, 소신보다 눈치가 더 중요한 지적 풍토 등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하고 두려운 것은 이런 요인들로 인해 권위와 주류에 대한 광범위한 불신이 뿌리내리고 그 음습한 토양에서 파괴적인 진영 논리가 더욱 활개치는 현실이다.

당연히 문제의 진원지는 정치권이다. 차기 선거만 눈에 보이고 미래 먹거리나 을의 눈물은 남의 일이다. 남에게 월급 주는 고통을 모르고, 수소사회를 선창할 용기도 없다. 이제 ‘국회의원 2선 제한’ 제안이 황당하게 들리지 않는다. 필자의 절충안은 3선까지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