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이 농산물의 맛있는 변신… 먹을거리 문제도 해결”

입력
2018.10.14 17:00
수정
2018.10.14 20:4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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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금채 지구인컴퍼니 대표가 서울 서초구 양재동 사무실에서 자사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민금채 지구인컴퍼니 대표가 서울 서초구 양재동 사무실에서 자사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맛과 영양에는 문제가 없지만 모양새가 좋지 않거나 작은 흠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시장에서 외면 받는 ‘B급 농산물’에 부가가치를 더해 주목 받는 회사가 있다. ‘지구인컴퍼니’는 설립한 지 겨우 1년밖에 안 되고 직원도 사장을 포함해 총 4명뿐인 스타트업이지만 남다른 기술력으로 소비자와 업계의 인정을 받으며 급성장하고 있다.

◇기자, 마케팅 등 다양한 경험이 강점

이 회사는 제품을 가볍고 신속하게 시장에 출시한 뒤 피드백을 토대로 개선, 발전시켜가는 ‘린(lean) 스타트업’ 방식으로 벌써 다섯 가지 제품을 내놓았다. 그 중 한 제품을 제외하곤 모두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품절될 만큼 시장 반응도 좋다. 민금채 대표는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쓰레기로 만든 것 아니냐’ ‘어떤 재료를 썼는지 믿을 수 없다’ 등의 반응이 많았지만 인식이 많이 바뀌어 못난이 농산물, B급 농산물에 대해 문의해 오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민 대표의 이력은 다채롭다. 여성중앙 연예부 기자 출신으로 포털기업 카카오에서 마케팅을 맡은 뒤, 배달 어플리케이션(앱)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로 옮겨 요리방법과 재료를 함께 배달해주는 ‘배민쿡’을 개발했다. 민 대표는 “기자로 취재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사람을 만날 수 있었는데 10여년 전부터 셰프, 푸드 스타일리스트, 농부 등 음식과 관련한 사람들과 친분을 맺으며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왔다”고 말했다. 카카오 커머스 사업부에선 콘텐츠 마케팅을 맡으며 스토리텔링 방식의 마케팅을 익혔다.

◇실패 경험 통해 사업 아이디어 얻어

B급 농산물에 대한 그의 관심은 3개월 만에 접어야 했던 배민쿡의 시행착오 속에서 오히려 커졌다. 민 대표는 “주문이 얼마나 들어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미리 식재료를 발주해야 해 재고 관리가 어려웠다”며 “재고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농가에서나 마트에서 나오는 농산물 재고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구에 살아가는 일원으로서 가장 근본적인 ‘먹을거리’에 대한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해보자’는 뜻으로 회사 이름을 짓고 창업에 나섰다.

민 대표는 린 스타트업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오랜 기간 공 들여 제품을 개발하기보다 일단 매출을 먼저 내면서 시장 소비자의 반응을 살피는 방식이다. 상근 인원도 최소화해 민 대표를 제외한 3명은 상품 개발, 디자인, 시스템 운영, 고객 서비스 등을 담당하고, 메뉴 개발은 5명의 파트너 셰프가, 제조는 5곳의 외부 업체가 맡고 있다. 당장 직원을 늘리기보다 비전을 함께할 수 있는 소수의 핵심 인력이 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집중력 있고 민첩하게 끌고 나가겠다는 것이다.

민 대표는 회사를 차린 뒤 우선 평소 친분이 있던 농부들이 마저 판매하지 못한 ‘못난이 농산물’이나 저장고에서 잠자고 있던 농산물을 가져다 팔았다. 농부로선 폐기 비용을 지출하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추가 수입이 생기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제품 개발에만 신경 쓰느라 마케팅에 여력이 없는 농산물 가공업체의 제품을 위탁판매 하기도 했다.

지구인컴퍼니가 재고 농산물을 판매한 건 당초의 목표인 재고 농산물을 활용한 가공식품을 개발하는 데 드는 시간과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민 대표는 못난이 농산물로 만들어도 충분히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해온 셰프들과 머리를 맞대고 개발에 나섰다. 그렇게 내놓은 것이 사과즙과 포도즙, 못난이 자두 병조림, 못생긴 미니사과 피클, 못생긴 귤 스프레드다. 대량 생산은 아니지만 이 제품들은 사과즙을 제외하고 모두 금세 품절됐다.

◇해외 수출도 겨냥

지구인컴퍼니는 최근 양송이버섯, 양파, 옥수수를 원료로 한 분말스프 3종 개발을 마쳐 곧 출시할 계획이다. 과일을 원료로 한 기존 제품은 인공첨가물이나 방부제를 넣지 않아 유통기한이 짧은 데다 1년 내 원료를 수급하기도 쉽지 않아 지속적 매출을 위해 개발한 제품들이다. 민 대표는 “대기업 편의점과 대형 커피전문점과 논의 중인데, 이 같은 유통망이 확보되면 매출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지구인컴퍼니는 관련 업체와 협업해 분말스프를 담는 비닐을 생분해성 비닐로 제작하고 용기 뚜껑도 생분해성 종이로 만들 계획이다. 민 대표는 “농산물 자체 대신 가공식품을 택한 건 농산물에 부가가치를 입혀 소비자들이 새로운 맛을 경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해외 수출까지 고려한 것”이라며 “친환경 용기도 잘 만들어 해외에 수출하고 싶다”고 말했다. 내년엔 분말스프를 10종으로 늘릴 계획이다. 최근 들어 매달 300% 이상 성장하고 있다는 지구인컴퍼니의 내년 목표 매출은 30억원이다.

지구인컴퍼니가 지닌 가장 큰 자산은 기술력과 데이터베이스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통ㆍ식품업체들이 창업한 지 1년밖에 안 된 이 회사에 제휴나 투자, 컨설팅, 납품 등을 문의해오는 것도 이들의 기술력과 기획력, 네트워크를 높이 평가해서다. 민 대표는 “파트너 셰프들과 함께 개발한 다양한 레시피, 식품 유형별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6,000여개 공장, 전국 각지의 농장에서 나오는 못난이 농산물 재고 등의 데이터베이스로 플랫폼을 만들 것”이라며 “우선은 상품 판매로 매출과 수익을 늘리고 이후 사업이 안정되면 물류창고 확보와 플랫폼 개발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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