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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을 잡기 위해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항목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거세게 일고 있다. 아파트 원가가 투명하게 공개되면 집값 거품을 30% 정도 걷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유한국당과 건설업계는 재산권과 영업비밀이 침해될 우려가 크다는 입장이다. 사진은 서울 동작구 흑석동 아크로리버하임 아파트 공사 현장. /고영권 기자

국내 대형 건설사에서 30년을 근무했던 지인의 증언이다. “건설업은 진입장벽이 매우 낮다. 경쟁이 치열해 평균 영업이익률이 5% 정도에 불과하다. 단 주택 부문은 예외다. 시공만 하는 재건축ㆍ재개발 등의 이익률은 10% 남짓이고, 자체 공사는 20%를 웃도는 경우도 많다. 건설사가 가격 결정권을 쥐고 있어서다. 아파트는 소비자가 구입하는 가장 비싼 제품이다. 그런데도 원가가 얼마인지, 분양가격이 적정선에서 매겨졌는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 분양원가 공개는 통신비 몇만 원 깎아 주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사안이다.”

□ 분양원가 공개는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2004년 천막 당사 시절 한나라당 당론이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취임 뒤 “장사 원리에 맞지 않는다”며 부정적 입장으로 바뀌었다. 여당 원내대표였던 김근태 의원이 “계급장 떼고 논쟁하자”고 맞섰다. 우여곡절 끝에 2007년 주택법이 개정돼 공공아파트 61개, 민간아파트 7개 항목의 원가 공개가 시작됐다. 이명박 정부는 금융위기로 건설경기가 가라앉자 공공아파트 공개 항목을 12개로 줄였고, 박근혜 정부는 민간아파트 공개를 아예 없앴다.

□ 분양원가 공개가 ‘집값 잡는 특효약’으로 다시 거론된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최근 민간과 공동 분양한 아파트와 10억원 이상 공공 건설공사 원가를 공개했다. 경실련이 공개된 신도시 두 곳의 실제 건축비와 분양가격을 비교했더니 26% 차이가 났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은 “분양원가만 공개해도 집값 거품 30%는 잡을 수 있다”며 공공택지에 들어서는 아파트 공개 항목을 61개로 늘리는 주택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시장질서가 무너진다”는 자유한국당 반대로 1년째 법사위에 발목이 잡혀 있다.

□ 쾌적한 주거생활은 국가의 책무이자 헌법에 보장된 국민 기본권이다. 주택이 공공성 강한 특수한 제품인 이유다. 그렇다고 민간 주택을 공공재로 보긴 어렵다. 분양원가 공개로 수익률이 낮아지면 아파트 품질이 떨어지고 공급이 줄어들 우려도 있다. 우선 공공아파트에 한해 분양원가를 공개하고 민간아파트가 따라오도록 인센티브를 주는 게 나을 성싶다. 정부 발주 토목공사에 적정 수익률을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다. 건설사가 집값 폭리를 취하는 구조를 방치하면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꿈은 계속 멀어질 수밖에 없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분양원가 공개 일지 /김경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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