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경의 반려배려] 떠돌이 개 ‘상암이’의 안타까운 죽음

입력
2018.10.09 13:59
수정
2018.10.09 23:28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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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마취총을 맞고 숨진 공원 떠돌이 개 상암이의 생전 모습. 상암이지킴이들 제공
지난달 28일 마취총을 맞고 숨진 공원 떠돌이 개 상암이의 생전 모습. 상암이지킴이들 제공

지난달 중순 서울 마포구 월드컵공원에서 개와 산책을 하던 중 갈색 털의 개를 만났다. 목줄도 없고 주변에 주인으로 추정되는 이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엔 우리집 개에게 달려들면 어쩌나 걱정이 됐는데, 수십 초가 지났을까, 우리가 먼저 자리를 뜨니 그 개도 유유히 사라졌다. 주인이 없는지, 길을 잃었는지, 잠시 집을 나온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냥 그렇게 개를 보냈다. 이후 공원 떠돌이 개에 대한 기억은 2주가 지난 지난주 온라인을 떠들썩하게 만든 기사를 보고서야 다시 떠올랐다. 기사 속 주인공이 그 갈색 털의 개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월드컵공원 관리를 담당하는 서부공원녹지사업소와 개를 돌보는 시민모임인 ‘상암이 지킴이들’ 관계자 말을 종합해 사건을 재구성해봤다. 지난 5월 월드컵 경기장 주변과 평화의 공원 등 월드컵공원 일대에 한쪽 귀가 접힌 게 특징인 무게 10㎏ 초반대의 혼종견이 나타났다. 순한 성격 덕분에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시민들과 반려견 놀이터 관계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상암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밥을 챙겨주는 이들도 생겼다. 상암이는 곁을 내주는 애교 많은 타입은 아니었지만 개 친구들과 노는 걸 무척 좋아했다. 자신은 들어가지 못하는 반려견 놀이터 밖에서 다른 개들이 노는 걸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10여명의 사람들은 상암이를 구조하고 새 가족을 찾아줄 계획까지 세웠다.

서울 마포구 월드컵 공원 한켠에 상암이를 추모하는 꽃과 메모들이 놓여 있다. 상암이 지킴이들 제공
서울 마포구 월드컵 공원 한켠에 상암이를 추모하는 꽃과 메모들이 놓여 있다. 상암이 지킴이들 제공

하지만 개를 무서워하는 일반 시민들에게 상암이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사업소에는 개를 빨리 잡아달라는 민원이 계속 들어왔다. 사업소는 엽사를 고용해 마취총으로 상암이를 잡기로 했다. 포획틀로 포획을 여러 번 시도했지만 워낙 경계심이 많고 똑똑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업소는 상암이를 포획해 돌보는 시민들에게 인계하려 했다. 하지만 추석 명절 이후인 지난달 28일 오전 상암이는 어깨부위에 마취총을 맞고 쇼크로 하늘나라로 떠났다. 이후 유기동물 포획방법에 대한 비판이 빗발쳤고, 유기견 포획 제도를 개선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1만2,000여명이 서명했다.

먼저 굳이 마취총을 사용해야 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사업소 측은 상암이 말고도 공원에 ‘들개’들이 많이 나타나 사람을 위협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 때 마취총 포획을 한 적이 있어 상암이에게도 마취총을 사용했다고 했다.

‘동물보호센터 운영지침’에 있는 유실ㆍ유기동물 포획방법에는 사람을 기피하거나 인명에 위해가 우려되는 경우, 위험지역에서 동물을 구조하는 경우에는 수의사가 처방한 약물을 투여한 블로우건(입으로 불어서 화살이나 침을 날리는 장비) 등 장비를 사용할 수 있다고 나와있다.

서울 마포구 월드컵공원에 살던 생전 당시 '상암이'. 상암이지킴이들 제공
서울 마포구 월드컵공원에 살던 생전 당시 '상암이'. 상암이지킴이들 제공
반려견 놀이터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개 친구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상암이. 상암이지킴이들 제공
반려견 놀이터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개 친구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상암이. 상암이지킴이들 제공

하지만 상암이는 사람이나 다른 개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 알려져 있었다. 무엇보다 구조에 동참할 시민들이 있었는데도 마취총을 사용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담당 공무원은 사용된 마취약이 수의사 처방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마취총을 사용했다 해도 상암이에게 맞는 마취약이 사용됐는지, 그 양은 적당했는지가 규명돼야 할 필요가 있다. 지침에는 수의사가 처방한 약물을 사용하도록 나와있지만 이를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는 것도 문제다. 상암이의 안타까운 죽음이 ‘제2의 상암이’가 나오지 않도록 유기동물 포획체계를 제대로 마련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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