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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장현씨는 “국내 요식업계는 트렌드에 너무 민감하다”면서도 새 요리법을 배우는데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조씨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 투자한만큼 얻는다. 아무리 비싼 요리책도 그 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히트 아이템이 나올 수 있고 그걸로 평생 먹고 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혜윤 인턴기자

최근 10여 년 간 국내 화제가 된 레스토랑 컨셉트를 모두 시도해 ‘성공한’ 요리사가 있다. 치즈 공방 겸 식당 ‘치즈플로’를 운영하는 조장혁(52)씨가 그 주인공. 국내 브런치 문화가 막 유행하던 2005년 서래마을에 브런치 식당 ‘키친플로’를 열고 수비드 공법의 돼지고기 요리와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를 선보였다. 가스트로펍(Gastropub·기존 영국 펍 문화에 미식 요소를 더한 식당)이 알려지던 2010년 가로수길에 이런 컨셉의 식당 ‘쉐플로’를 열었다. 쉐플로에서 직접 만든 수제 치즈, 샤퀴테리(charcuterie·염지가공한 돼지고기 식품) 요리를 선보인 그는 2년 전 아예 이 식재료들까지 파는 식당 ‘치즈플로’를 한남동에 열었다. 최근 치즈플로에서 만난 조씨는 “얼마 전 만난 포털사이트 관계자가 요즘 부쩍 늘어난 검색어가 치즈라고 했다. 외식업 유행 주기가 너무 짧아 김치처럼 유행 안 타는 음식 만들고 싶어 아티장푸드에 집중했는데, 아티장푸드가 유행이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치즈 생산량은 2013년부터 작년까지 4년 사이 57.3%, 같은 기간 1인당 치즈 소비량은 연평균 10%씩 늘었다.

“세상이 외환위기 전후로 바뀌었죠. 그전까지 좋은 대학 나와 좋은 기업에 들어가는 게 꿈이었고 이뤘어요. 회사에서 정년까지 열심히 일하는 게 목표였는데, 외환위기로 모든 게 ‘올 스톱’ 됐죠.” 조씨의 전 직장은 삼성전자 해외수출팀. 1992년 입사해 팩시밀리, 복합기, 프린터 수출을 맡았고 ‘삼성맨의 꿈’인 ‘지역전문가’ 대상자로 뽑혔다. 1년 간 해외에 머물며 그 지역의 언어와 인맥을 익히는 연수 제도다. 가족과 외국 생활을 꿈꾸던 찰나, 외환위기가 들이닥쳤고 해외에 나갔던 동료들도 국내로 호출됐다. “매출 잘 나오는 사업도 하루아침에 정리되는 걸 보면서 ‘나는 회사형 인간인가, 아닌가’를 고민했죠.”

'치즈플로' 오너 셰프 조장현씨. 김혜윤 인턴기자

입사 10년 차인 2001년, 독일 출장차 들렀던 뮌헨 공항에서 ‘9.11 테러 보도’를 보고 퇴사 결심을 굳혔다. 30대 중반에 전직을 한다면 ‘좋아하는 일보다 잘 하는 일’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고교시절 꿈꾸던 디자이너가 아닌 요리사로 방향을 정했다. 미국 미식의 새 장을 연, 전설의 요리사 찰리 트로터가 정치학을 전공한 늦깍이라는 사실이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첫 목적지는 런던. 르꼬르동블루 요리 과정에 등록했다. “아이 둘, 아내와 생활하니 석달 만에 천만원을 썼더라고요. 그때 좀 만감이 교차했죠. 주재원으로 영국에 온 동료들 사택은 꽤 넓고 쾌적했거든요. 체류기간을 늘려 될 수 있는 대로 식당에서 아르바이트 했어요.” 영국에서 수제 맥주 만드는 방법을 배웠지만 ‘마이크로 브루어리(소규모 양조장)’ 투자금이 전혀 ‘마이크로’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포기, 귀국해 소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는 브런치 식당을 열었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이 강세를 보이던 시기, 맛없기로 소문난 ‘영국 집밥’으로 승부를 냈는데도 결과는 대성공. 조씨는 “어쩌다 기념일에 한 번 찾는 식당이 아니라 매일 집밥 먹는 것처럼 들릴 수 있는 식당이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학시절 영국에서 먹었던 음식들을 재현했다”고 말했다.

이후 문 연 식당들의 공통점은 ‘내 돈 주고 밥 사먹을’ 주인 취향 듬뿍 담은 곳이다. 2010년 문을 열어 신사동, 도곡동 두 곳에서 운영하고 있는 ‘쉐플로’는 “맛있는 음식에 술과 음료를 곁들이는 문화를 만들자”는 컨셉트로 시작했다. 미국과 프랑스, 이탈리아를 오가며 새로운 요리법을 익히고 선보였다.

요리를 할수록 치즈, 샤퀴테리 같은 아티장푸드를 제대로 배우고 싶은 욕심도 커졌다. 2013년 뉴질랜드에 한 달간 머물며 장인에게서 치즈 만들기를 배웠고, 국내 돌아와 목장을 돌아다니며 원유를 구해 치즈를 만들기 시작했다. “치즈 만드는 게 이렇게 어려운 분야인 줄 몰랐죠(웃음). 우유 상태나 기후, 장비가 조금만 달라도 맛이 변할 정도로 예민하기 때문에 일정수준 이상 제품을 만들려면 최소 3년 정도 시행착오를 겪어야 합니다.”

'치즈플로' 오너 셰프 조장현씨가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치즈를 만들고 있다. 김혜윤 인턴기자

‘치즈플로’에서 만드는 치즈는 10여종. 살균처리하지 않아 숙성에 따라 맛의 깊이가 다른 치즈를 맛볼 수 있다. 조씨는 “요리사가 된 후 내 삶에 만족하고 있다. 시간, 지식, 경험이 쌓일수록 좋은 품질을 낼 수 있는 음식을 만들고 싶었고 (치즈를 만들면서) 그럴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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