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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과학자' 둘러싼 심한 차별속에서도 성과 이뤄내

※ [모슈]는 ‘모아보는 이슈’의 준말로, 한국일보가 화제가 된 뉴스의 발자취를 짚어보는 기사입니다.

2018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아서 애슈킨(왼쪽부터), 제라르 무루, 도나 스트릭랜드. 스트릭랜드 워털루대 교수는 55년만에 나온 여성 수상자다. 노벨상위원회

“여자가 왜 과학을 공부하나요?”

1963년 여자로서는 역대 2번째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과학자 마리아 메이어는 종종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럼 여자가 글을 배운 게 그저 요리책을 읽기 위한 건가요?” 그녀의 답이었습니다.

그때로부터 약 반세기가 지난 올해 노벨상의 가장 큰 이슈는 다시 ‘여성 과학자’ 입니다. 메이어 이후 무려 55년이나 지났는데 올해에서야 3번째 노벨 물리학상 수상(공동수상) 여성 과학자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도나 스트릭랜드(59) 캐나다 워털루대 교수가 바로 그 주인공. 현재 라식 수술에 사용되는 ‘레이저 물리학’ 분야의 혁신적 성과를 인정 받은 것입니다. 그녀 외에 또다른 여성 과학자 프랜시스 아널드(62) 캘리포니아공과대 교수는 화학상의 공동 수상자입니다. 역시 여성으로 역대 5번째, 9년만의 수상이었습니다. (‘미투’ 운동의 여파로 최초로 노벨 문학상이 선정되지 못한 것도 올해 큰 이슈입니다.)

때문에 현재 노벨상을 둘러싸고 “여성 과학자에게 너무 보수적이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숫자로는 명확합니다. 1901년 노벨상이 생긴 이래 지금까지 노벨과학상(물리학상, 화학상, 생리ᆞ의학상)을 수상한 604명 중 여성 과학자는 불과 20명, 3%입니다.

2018년 기준 노벨상 수상자 성비

유리천장으로 악명 높은 노벨 과학상, 특히 노벨 물리학상의 벽을 뚫은 세 명의 여성 과학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노벨상을 스스로 거부해달란 회유, 40세까지 정규직 채용이 안 되던 차별, 올해 노벨상 수상자인데 아직도 ‘부교수’인 점 등. 주변의 부당한 상황은 계속됐지만 그것이 그녀들의 과학적 재능과 성과를 막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이 상은 라듐과 폴로늄에 수여된 것입니다” 마리 퀴리
남편 피에르 퀴리(왼쪽)과 함께 파리의 연구실에 앉아 있는 마리 퀴리. 위키백과

1903년 여성 최초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이자 세계 최초로 노벨상을 중복 수상한 프랑스 과학자 마리 퀴리(1867~1934)의 공로는 방사성 물질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수상 과정은 순조롭지 못했습니다. 첫 상을 받은 1903년 당시 노벨위원회는 퀴리의 남편인 피에르와 앙리 베크렐의 이름만 수상자 명단에 올렸습니다. 아내와 함께 연구를 진행한 피에르가 적극적으로 공동 수상을 요구했고, 이에 간신히 마리의 이름도 수상자 명단에 오를 수 있게 됐습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난 마리 퀴리는 여자가 대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던 조국을 떠나 프랑스에서 가정 교사로 일하며 공부를 했습니다. 소르본대 시절 만난 피에르 퀴리는 마리의 천재성을 알아본 든든한 조력자였습니다. 두 사람은 화학원소인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해 방사선의 신세계를 열었습니다. 1906년 피에르가 마차 사고로 사망한 뒤 퀴리는 1911년 또 다시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당시 퀴리는 남편의 제자인 유부남 폴 랑주뱅과 사랑에 빠진 상태였습니다. 앞서 퀴리의 수상을 결정해버린 노벨위원회는 난감해하며 퀴리에게 자발적으로 상을 포기해달라는 말을 넌지시 전합니다. 퀴리는 짧게 대답했습니다.

“이 상은 라듐과 폴로늄의 발견에 수여된 것입니다. 저의 과학적 업적과 사생활 사이에는 연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적 연구에 대한 평가가 사생활에 대한 중상 모략에 영향을 받는 건 부당한 일입니다.”

퀴리는 오래 연구생활 동안 다량의 방사선을 쪼인 결과 악성빈혈 등 합병증을 일으켰고 6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40대 넘어서야 비정규직 벗어난 마리아 메이어
여성으로서 두 번째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마리아 괴페르트 메이어. 사라로렌스대학

마리 퀴리 이후 60년 만에 두 번째 여성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나왔습니다. 독일계 미국인 마리아 괴페르트 메이어(1906~1972)는 원자핵의 껍질 모형을 제안한 공로로 196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처음으로 대학에서 돈을 받고 가르치게 된 건 마흔이 가까워서였습니다.

마땅한 교육시설이 없어 여성참정권자들이 세운 사립 고등학교에서 공부한 메이어는 독일 괴팅겐 대학에 입학해 수학을 공부하다가 물리학에 빠지게 됐습니다. 1930년 결혼한 남편 조셉 에드워드 마이어는 미국인 물리화학자로, 마리 퀴리의 남편 피에르처럼 아내의 재능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미국으로 이사한 뒤 남편 조셉은 존스 홉킨스대에서 조교수 자리를 얻었지만 마리아는 같은 대학에서 남편과 부인을 동시에 채용하지 못하게 하는 원칙으로 인해 정규직에 채용될 수 없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일이란 다른 교수들을 도우며 푼돈을 받는 게 전부였지만 물리학에 대한 순수한 애정으로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무보수, 비정규직을 전전하던 그는 1946년 드디어 시카고의 아르곤 국립연구소에서 시간제 근무로 수석 연구원직을 맡게 됐습니다. 메이어가 “독립적인 과학자로서 내 경력이 시작된 시기”라고 부른 이 기간 동안, 노벨상의 계기가 된 원자핵 껍질의 수학적 모형이 탄생했습니다.

메이어는 1960년 샌디에이고의 캘리포니아대 정교수로 임명됐지만, 3년 뒤 노벨상을 받을 땐 뇌졸중으로 메달조차 다른 사람을 통해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생전에 여자가 왜 과학을 공부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여자들이 글을 배우는 게 그저 요리책을 읽기 위한 건가요?”라고 되물었다고 합니다.

◇노벨상 수상자인데 부교수? 도나 스트릭랜드
55년만의 여성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도나 스트릭랜드. 위키피디아

도나 스트릭랜드(1959~)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은 마리아 메이어 이후 55년만입니다. 미국의 아서 애슈킨 박사, 프랑스의 제라르 무루 박사와 함께 올해 노벨 물리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된 그는 레이저 물리학 분야에서 이룩한 성과를 높게 평가 받아 수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스트릭랜드는 “우리는 현장에 있는 여성 물리학자 모두에게 축하해야 한다. 내가 그들 중 하나라는 것에 자랑스러움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스트릭랜드 교수가 상을 받기 전, 심지어 받은 직후에도 그의 영문판 위키피디아 페이지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영국 가디언지는 이를 보도하며 지난 3월 위키피디아 사용자들이 그의 프로필을 만들려고 했으나 운영진으로부터 거부 당했다고 전했습니다. 위키피디아의 성차별(편집진의 16%만이 여성)이 고스란히 과학계 성차별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마침 노벨물리학상이 발표되기 사흘 전인 9월 28일,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8명을 배출한 스위스 제네바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초청 강연자의 성차별적 발언이 나왔습니다. 이탈리아 피사대의 알레산드로 스트루미아 교수는 워크숍에서 “물리학은 남자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발언을 한 것입니다.

이는 스트릭랜드가 여전히 부교수(Associate-Professor)인 사실과 더불어 과학계 성차별을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는 BBC와 인터뷰에서 “정교수 승진 신청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으나, 메인대 고생물학자인 재클린 질은 트위터에 이를 언급하며 “여성들이 내적 외적인 편향으로 인해 승진을 좀 더 오래 기다린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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