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곡ㆍ믹싱… 라운지 달아오르면 보람ㆍ쾌감이 절로”

입력
2018.10.10 04:4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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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서울 청담동의 한 EDM 라운지 바의 DJ 부스 안에서 아마추어 DJ 권오성씨가 리듬을 타며 믹싱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서울 청담동의 한 EDM 라운지 바의 DJ 부스 안에서 아마추어 DJ 권오성씨가 리듬을 타며 믹싱 작업을 하고 있다.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달 22일. 밤 11시가 넘어가자 서울 청담동의 한 빌딩 건물 1층에 있는 라운지 바 앞으로 고급 외제차가 잇달아 멈춰 섰다. 패션 잡지에서 튀어 나온 듯 세련되게 차려 입은 남녀가 하나 둘씩 차에서 내려 라운지로 들어갔다. 물론 라운지 내부에는 퇴근 길에 들른 듯 펑퍼짐한 정장을 입은 사람도, 무심한 듯 트레이닝복(그럼에도 비싸 보이는)을 걸친 사람도 섞여 있었지만 딱히 위화감은 없었다. 이날 개그맨 조세호씨가 지인들과 라운지에 와 있었는데 역시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40대 남성도, 외국인 여성도 각자 나름대로 분위기를 즐길 따름이었다.

굳이 타인을 신경쓰기엔 음악이 너무 매력적이었던 걸까. 부지런히 돌아가는 미러볼이 어두운 실내를 비추는 가운데 스피커에서 ‘둥둥둥’ 흘러 나오는 빠르고 중독적인 EDM(Electronic dance music) 리듬이 공간을 밀도 높게 채웠다. 사람들은 아이스버킷에 담긴 샴페인이나 와인 같은 가벼운 술을 홀짝이면서 박자에 맞춰 고개를 끄덕끄덕거리거나 어깨를 흔들었다. 이 공간의 주인은 사람보다 음악인 게 분명했다. 음악은 두 곡이 동시에 섞여서 나오기도 했고, 원곡에는 없는 효과음이 들어가기도 했다. 보컬의 목소리가 들어있는 곡도 있었지만 다른 장르와 달리 목소리가 주인공이 아니라 여러 효과음 중 하나에 불과했다. 아예 비트와 멜로디로만 구성된 곡도 있었다. 전자음은 차갑고 무심했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현실에 지친 사람들을 위무하는 듯했다.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싶으면 신나는 곡이 나왔고, 자극이 지나치다고 느낄 무렵엔 비교적 차분한 곡이 재생됐다. 곡의 구성에도 신경을 쓴 듯했다. 이런 모든 음악적 효과는 라운지 한 켠에 마련된 DJ(디스크자키) 부스에서 이뤄졌다. 한 사람이 겨우 서 있을 만한 넓이의 부스 내부에서 DJ가 헤드폰을 낀 채 진지한 표정으로 디제잉 기기(믹서)를 만지고 있었다.

◇디제잉 공부해 크루 만들어 즐기는 아마추어 DJ

이날 오후 11시부터 자정께까지 이 라운지의 DJ를 맡은 권오성(33)씨는 금융회사 직원이다. 2014년부터 자비를 들여 학원을 다녀가며 디제잉을 배운 뒤 결혼을 한 요즘도 적어도 한 달에 한번은 이날처럼 라운지 등을 다니며 ‘5dinary’라는 이름의 아마추어 DJ로 무대에 오른다. 권씨는 클럽이나 파티 문화를 즐기는 편이 아님에도 EDM 음악의 단순하면서도 ‘귀에 꽂히는’ 맛에 처음 접하는 순간부터 빠져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EDM 감상을 좋아하는 것과 직접 DJ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왜 시간과 돈을 들여 디제잉까지 배우게 됐을까.

“혼자 EDM 곡을 찾아 듣던 중 좋은 곡을 들을 때마다 ‘이런 기분을 나 혼자 느끼는 건 아쉽다.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함께 즐기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DJ 학원 홍보물을 보고 디제잉을 배우기로 결심했어요.”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남들과 공유하고 싶은 욕구, 그리고 자신이 추천한 음악에 남들이 반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쾌감이 그만큼 컸다는 얘기다. 가장 보람되는 순간 역시 자신이 선곡한 음악을 들으며 클럽을 찾은 사람들이 신나게 춤을 추는 걸 볼 때다.

권씨 같은 아마추어 DJ들은 ‘크루’를 구성해 서로 교류하기도 한다. 권씨는 10여명의 회원이 있는 ‘디거스’(Diggers) 크루에 속해 있다. 디제잉을 위해 좋은 음악을 발굴하는 행위를 뜻하는 ‘디깅’(digging)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이날 라운지에는 디거스 크루의 또 다른 멤버인 강준구(38)씨가 와 있었다. 유통회사 직원인 강씨는 2011년 한 음악 페스티벌에 갔다가 EDM을 접한 뒤 푹 빠졌다. 춤이 취미인 그는 이후 댄스에 적합한 EDM 곡을 직접 발굴하고 선곡하다 보니 자연스레 디제잉으로까지 관심 영역이 넓어졌다고 한다. 그는 아마추어에게도 실제 무대에 서 볼 기회가 주어지는 것을 EDM 분야의 장점으로 꼽았다.

“DJ는 다른 분야에 비해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편이에요. 다른 직업을 가진 채로 DJ로 활동하더라도 본인이 노력만 하면 프로와 비슷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이죠.”

그러나 아마추어 DJ들이 불가피하게 ‘은퇴’를 고민해야 하는 순간도 있다고 한다. 라운지나 클럽은 황금 시간대가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이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DJ 활동이 힘에 부칠 수밖에 없다. 또 가정을 꾸린 경우에도 잦은 클럽행은 배우자 눈치가 보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부담 때문인지 요새는 30만~40만원대 기본 디제잉 기기를 구입해 집에서 디제잉을 즐기는 일명 ‘베드룸(침실) DJ’도 생겼다.

아마추어 DJ들은 디제잉을 하는 중간에도 다른 DJ들과 소통하며 선곡 방향 등에 조언을 받는다.
아마추어 DJ들은 디제잉을 하는 중간에도 다른 DJ들과 소통하며 선곡 방향 등에 조언을 받는다.

◇좋은 DJ의 조건은?

DJ는 아마추어라 해도 실수가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곡이 갑자기 끊기거나 믹스한 두 곡이 엇박자가 나는 사고가 나면 클럽이나 라운지의 달아 오른 분위기가 한 순간에 식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EDM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은 어설픈 DJ에게 자신의 소중한 주말 밤을 낭비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실력 있는 DJ는 환호로 보상 받지만 시원찮은 DJ는 교체를 요구 받기 십상이다. 클럽이나 라운지 측에서 먼저 DJ를 교체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마추어 DJ들도 실력을 쌓기 위해 정보를 얻고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좋은 DJ의 첫번째 조건으로 꼽히는 건 ‘아는 곡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그때 그때 분위기에 최적화된 곡을 틀 수 있어서다. 그러려면 일단 다양한 곡을 많이 들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들어본 곡은 자신만의 기준으로 분류를 해 놓아야 한다. 특히 EDM은 별다른 악기 없이 컴퓨터만 가지고 곡을 만들 수 있는 특성 탓에 새로운 곡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DJ들은 항상 신곡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디제잉 기기의 발전 등으로 과거보다 평준화됐다고 해도 디제잉 기술은 여전히 좋은 DJ의 빠질 수 없는 조건이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믹싱 기술’. EDM은 춤을 추기 위한 음악이어서 한 곡에서 다음 곡으로 넘어갈 때 가급적 듣는 사람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흥이 끊겨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끊김이 없도록 아예 두 곡을 동시에 트는 방법도 있다. 이런 믹싱에서 관건은 분위기에 어울리는 곡들을 찾아 이들 곡의 비트 속도(BPM)를 맞추는 일이다. 비트의 속도만 맞으면 EDM은 두 곡이 동시에 재생되어도 큰 이질감이 없다고 한다. 곡의 속도는 디제잉 기기를 통해 조절할 수 있다.

DJ들이 중간중간 헤드폰을 썼다 벗었다 하는 행위는 이런 믹싱의 일환이다. 스피커를 통해서 현재 재생되고 있는 곡을 듣고, 헤드폰으로는 다음에 틀 곡을 미리 들으면서 박자와 분위기를 분석하는 것이다. 권씨는 “연결해야 할 두 곡의 BPM을 기기가 알아서 분석해 주는 요즘은 기술의 차별성이 줄어들긴 했지만 믹싱 기술은 여전히 중요하며 좋은 DJ를 가르는 주요 기준”이라고 말했다.

주어진 시간 동안 기승전결을 고려해 전체적인 곡의 구성을 잘 짜는 것도 DJ의 능력 중 하나다. 분위기 있는 음악만 계속 틀면 지루하고, 신나는 곡만 연달아 틀어도 피로해질 수 있다. 선곡 리스트를 미리 짜서 오는 경우가 있지만 무대 위 분위기에 맞게 그때그때 가장 적합한 곡을 틀어줘야 하기 때문에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순발력이 중요하다고 한다. 강씨는 EDM 디제잉이 ‘고독한 장르’라고 설명했다. 그는 “DJ 한 사람이 책임을 지고 적게는 1시간, 길게는 2시간 이상 사람들을 신나게 놀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데서 오는 부담이 상당하다”면서 “내공을 쌓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DJ가 되려면

디제잉은 유투브 동영상 등을 보고 독학하거나 DJ 학원을 다녀 배울 수 있다. 아마추어 DJ로 활동하다 보면 라운지나 소규모 클럽에서 활동할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라운지나 소규모 클럽에서는 아마추어 DJ를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마추어 DJ들이 모인 크루가 라운지 측과 협의해 일정을 잡기도 하고, 반대로 라운지에서 연락을 해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아마추어 DJ는 본인이 즐기기 위한 목적도 있어서 큰 대가를 기대하긴 어렵다. 수고비 명목으로 통상 한 번에 받는 금액이 몇 만원 정도라고 한다. 대형 클럽들은 주로 실력이 검증된 프로 DJ를 고용해서 쓴다. 이렇게 특정 업소에 고용돼 일하는 이들을 ‘레지던트 DJ’라고 부른다.

해외 유명 DJ들은 작곡(프로듀싱)도 병행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들은 자신이 만든 곡들을 편곡해 현장에서 틀어 준다. 음원 수입은 물론 전세계 EDM 페스티벌이나 유명 클럽 행사에 초청 받아 다니며 돈을 버는 최상급 DJ들은 연간 수입이 500억원을 넘는 경우도 있다. 올해 4월 28세 나이로 요절해 팬들을 안타깝게 한 스웨덴 태생의 아비치(Avicii)와 네덜란드의 티에스토(Tiesto), 노르웨이의 알렌 워커(Alan Walker) 등이 작곡을 병행하는 대표적인 DJ들이다.

다음 무대에 오를 DJ가 자신이 선곡한 음악이 담긴 USB를 디제잉 기기에 꽂고 있다.
다음 무대에 오를 DJ가 자신이 선곡한 음악이 담긴 USB를 디제잉 기기에 꽂고 있다.

글ㆍ사진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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