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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취미에는 달리는 것이 있다. 어느 날 달리기에 대한 에세이를 읽고 있었는데, 작가가 그 책을 너무 아름답게 잘 쓴 것이 화근이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책을 덮고 동네 한 바퀴를 달리고 말았다. 이후 나는 꾸준히 비정기적으로 달리기를 하고 있다.

달리기는 혼자 어느 때건 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누군가를 부를 필요도 없고 장비를 구할 필요도 없다. 당장 일어나 신발 끈을 묶고 원하는 곳에 다녀오면 된다. 나는 기록 단축을 추구하거나 한계를 시험하기 위해 달리지도 않는다. 사람들과 무리 지어서 달리는 것은 번잡해 해볼 생각이 없다. 그냥 호젓하게 해 질 녘 풍경도 관찰하고, 잠시 바람도 쐬면서 몸도 푸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내 달리기는 많이 쉬고 정처가 없다. 내키면 천천히 달렸다가 안 내키면 조금 빠르게 걷는 식이다. 그러니 이 행위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몸을 움직여 내키는 장소에 존재했다가 돌아오기’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다른 취미로는 독서가 있다. 너무 늘 하고 있어 취미라고 부르기 약간 어렵다. 또 다른 어느 날 나는 아주 재미있는 책을 읽고 있었다. 너무 늦지 않게 달리기를 하러 나가야 하는데, 읽던 책을 도저히 끊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나는 번뜩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책을 들고 읽으면서 달려 볼까. 가능하다면 일석이조가 아닌가.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것이 내가 종종 하고 앞으로 설파할 취미계의 하이브리드, 일명 ‘책달’이다.

실제 ‘책달’의 과정은 이렇다. 날씨를 가늠하고 당일 달리면서 읽을 책을 고른다. 얇은 책을 한 번에 읽어도 괜찮고 두꺼운 책의 일부만 읽어도 괜찮다. 하지만 지루한 책은 달리다 실망스러우면 교체할 수 없어 괴롭다. 재미있는 책을 고르는 마음만으로 벌써 재미있다. 넉넉히 두 시간 분량의 음악 리스트를 넣고, 고른 책을 들고 바깥으로 나온다. ‘책달’의 시작이다.

벌써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겠냐고 걱정할 수 있다. 하지만 어차피 전력질주를 하면서 책을 정독할 수 없다. 할 수 있어도 모양이 썩 좋지 않을 것이다. 나는 반은 걷고 반은 뛰므로, 뛸 때는 책을 들고 있다가 걸을 때 책을 읽는다. 평생 읽으며 걸었지만 누군가와 부딪혀본 일은 없고, 활자도 제법 눈에 잘 들어온다.

‘책달’은 일단 집중하기 쉽다. 책과 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집에서 책을 읽다 내용이 어려워지면 유독 그때 스마트폰이 울리거나 음식물 쓰레기가 버리고 싶거나 바닥 청소가 하고 싶다. 그러나 걸으면서 책을 읽고 있다면 더 이상 다른 생각은 무리다. 잘 안 읽히던 책도 고립의 힘 앞에서는 읽힌다.

또한 달리기의 본질은 혼자 생각하는 일이다. ‘책달’의 과정에선 그 생각이 읽고 있던 활자로 대체된다. 책에 묻혀 있다가 고개를 들어 달리며 방금 그 활자를 되새김한다. 한 번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으며 고수부지를 달렸다. 정신없이 빠져 있다 고개를 들자 풍경이 특별해졌다. 내가 보고 있는 세상이 이렇게 위대한 작품을 낳고야 만 것이었다. 다른 날은 ‘그리스인 조르바’와 함께였다. 조르바의 호쾌한 대사를 우물거리자 풍경은 무한하고 광활한 것이 되었다. 그날 한강 고수부지는 햇살이 쏟아지는 크레타 해변처럼 보였다.

독서는 혼자만의 추억을 남긴다. 책은 같은 것이 없으므로 독서의 기억은 늘 다르게 적힌다. 내가 실내가 아닌 바깥에서 달리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어제의 달리기는 오늘의 달리기와 달라지기 때문이다. 매일 다른 책과 함께라면 그날의 달리기는 더 독보적인 추억이 된다. ‘책달’은 같은 달리기를 특별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러나 달리기를 오래 했어도, 나같이 책을 든 사람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앞으로 만난다면 이 글을 읽은 것으로 간주하고 반가워하겠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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