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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황동하 서울명동관광특구협의회 회장

황동하 서울명동관광특구협의회 회장은 “외국 관광객들 보단 내국인들에게 사랑 받는 쇼핑 1번지로 재탄생하는 것만이 명동이 살 길이다”고 강조했다.

“확 바꿔야 삽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35년 서울 명동에서 잔뼈가 굵은 상인의 마음은 다급했다. 오랫동안 장돌뱅이로 보내면서 시장의 생존 원리를 몸소 터득한 ‘경험치’로 보였다. 현재 명동상권이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였다는 위기감이 묻어났다. 5일 서울 명동관광특구협의회 사무실에서 만난 황동하(57) 회장은 “할 일이 태산이다”며 운을 뗐다.

“아무도 협의회 회장을 맡으려고 하지 않았어요. 최악의 상황이란 걸 모두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30년 넘게 명동에서 땀을 흘린 제 입장에선 도저히 모른 체 할 수 없었습니다.” 황 회장이 올 1월 제10대 회장에 취임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황 회장이 총대를 메고 나선 데는 굴곡졌던 그의 서울 생활 정착기와 무관치 않았다. 군 제대(1983년) 이후 빈 손으로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한 그에게 가시밭길은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다. “무시당한 건 예삿일이었어요. 말도 못하죠. 고생한 것을 어떻게 전부 이야기 합니까?” 혹독했던 지난날이 떠오르는 듯, 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황 회장은 그럴수록 이를 악물었다고 했다. 장사는 밑천 없이도 가능했던 길거리 노점상부터 시작했다. 사진첩에서부터 신발과 각종 의류 등을 포함해 돈이 될 만한 상품들은 모조리 동대문에서 떼어다가 팔았다. 황 회장이 700억원대 사업체를 일으킨 자수성가형 인물로 다시 태어난 것도 산전수전 끝에 얻어낸 산물이었다. 그가 명동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는 이유였다.

황동하 서울명동관광특구협의회 회장은 “지금 명동에게 닥친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며 “명동도 이젠 쇼핑은 물론이고 문화나 예술적인 가치가 더해진 지속 가능한 자생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우선 명동상권의 침체 배경을 내부에서 찾았다. “언제까지 남의 탓만 하고 있을 순 없습니다. 사드 문제가 터진 게 언젠데 아직도 그 탓만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무너진 명동상권의 현주소를 2년 전 사드로 인한 중국관광객(유커) 제한 여파로만 돌리기엔 역부족이란 설명이다. 웬만한 불황에도 꿋꿋하게 버텨왔던 명동이었지만 요즘이 더 최악이라는 것이다.

“지금 명동 상점에선 한국말을 제대로 하는 종업원들이 드물어요. 한국 사람들보다 외국 관광객들이 더 많이 오기 때문입니다. 이건 말이 안됩니다. 외국인 전용 면세구역도 아닌데. 무조건 내국인들을 끌어와야 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찾아오지 않는 한국 시장에 외국인들이 오지 않아서 망했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명동 상권의 지속 가능한 자생력은 반드시 ‘내국인들도 먼저 찾는 곳’이란 인식에서부터 출발해야 된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황 회장은 다소 민감한 임대료에 대해서도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5층짜리 건물에 1층만 가게가 들어와 있고 2~5층은 비어 있는 상가가 적지 않아요. 높은 임대료를 유지하기 위해 일정한 수준 밑으로는 임대료를 내리지 않겠다는 속셈이거든요. 이래선 안됩니다.” 임대료 인하로 명동상권의 진입 문턱을 낮춰야 된다는 게 그의 오랜 경험에서 나온 해법이다.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명동상권도 동반성장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특히 명동도 문화와 예술이 결합된 복합 쇼핑 타운으로 거듭나야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젠 쇼핑의 개념이 바뀌었어요. 예전엔 단순하게 물건만 사는 게 쇼핑이었지만 지금은 볼거리와 즐길거리까지 가미된 또 다른 가치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명동관광특구협의회에서 10일로 예정된 ‘금난새의 클래식 판타지아’를 준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금난새 지휘로 명동 예술극장 앞 야외무대에서 연출될 이 향연에선 뉴월드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로 푸치니와 차이코프스키 등 클래식 거장들의 선율을 감상할 수 있다.

인터뷰 말미에선 뼈 있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위기는 기회’란 말이 있잖아요. 지금 명동상권이 그렇습니다. 유커들 대신 동남아시아 관광객 유치를 위해 방법을 모색하고 그 동안 소홀했던 내국인들의 마음을 돌려 놓아야 해요. 그것만이 명동상권이 자생력을 갖출 수 있는 지름길이니까요.”

글ㆍ사진=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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