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시인 전원책’의 정치 도박

입력
2018.10.05 15:37
수정
2018.10.05 17:32
26면

‘보수논객’ 타이틀을 가진 전원책 변호사는 종합편성채널(종편)이 만든 스타다. 이명박 정부가 마구잡이로 인가한 종편이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토론프로그램을 우후죽순처럼 신설하는 과정에서 몸값이 치솟은 인물이다. 경상도 특유의 거센 억양과 시원시원한 입담에다, 보수진영에서 보기 드물게 순발력까지 갖춘 달변가여서 그를 찾는 러브콜이 이어졌다. 2016년 1월부터 진보진영의 유시민 작가와 함께 진행한 JTBC ‘썰전’은 그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고 급기야 지난해 7월 TV조선 9시 뉴스 앵커로 발탁되기도 했다. 결과는 굴욕이었지만.

▦ 하지만 전원책은 변호사나 논객보다 시인으로 불리길 더 원한다. 울산 태생인 그는 부산고에 진학해 문예반에서 활동하며 문학청년의 꿈을 키워왔고, 경희대 법대 시절인 1977년과 군법무관으로 복무하던 1990년 두 차례에 걸쳐 시인으로 등단했다. 1991년 첫 시집 ‘슬픔에 관한 견해’를 펴낸 그는 보수논객으로 활약하던 2016년 두번째 시집 ‘나에게 정부는 없다’를 내놨다. 그에게 시는 외도가 아니라 정도 혹은 본업이라는 선언이다. 독설과 막말의 ‘단칼’ 싸움꾼 이미지부터 떠오르는 그가 시적 감수성을 놓지 않은 것은 의외였다.

▦ 전 변호사가 자유한국당의 인적 청산을 주도할 ‘칼잡이’로 투입되자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일단 기대가 우세하다. 정두언 전 의원은 “예상치 못한 깜짝 카드”라며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을 대신해 ‘그때 그사람’을 쳐내는 악역을 맡기에 딱 적절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전투력만 강조하는 강경보수 이미지를 벗는 것은 숙제라고 했다. 쇄신의 첫삽도 뜨기 전에 당내 역풍도 거세다. 박근혜계는 ‘청산=분열’프레임으로 기득권을 사수할 태세이고 홍준표계 역시 위협을 느낀 듯 집단행동 움직임을 노골화하고 있다.

▦ 하지만 굴욕은 다시 없다는 듯 전 변호사는 “칼을 쥐었으니 욕을 먹더라도 할 일은 할 것”이라고 투지를 불태운다. 기준도 정했다. “국정 어젠다에 대한 이해와 정직함, 결단력과 자기희생 정신이 있어야 한다. 의원으로서의 품성과 소명의식, 열정은 기본이다.” 쇄신의 목적이 배제가 아니라 새피 수혈을 통한 면모 일신이라고도 했다. 반면 자신의 지론인 보수통합론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논리와 감수성은 물론 정치적 상상력까지 요구되는 고도의 작업인 탓일 게다. 자신의 이름을 건 도박에서 그가 어떤 패를 깔지 궁금하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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