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ㆍ담] “연내 종전선언 가능... 우리 정부가 제재완화 로드맵 만들 때”

입력
2018.10.04 20:00
수정
2018.10.04 21:25
28면

 동창리 폐기와 핵신고-종전선언-ICBM 및 영변 핵시설 폐기 순 진행될 듯 

 북한의 과감한 조치 조건으로 미국의 종전선언 동의 이끌어낼 수 있을 듯 

김정곤 논설위원의 사회로 김준형(왼쪽) 한동대 교수와 홍현익(가운데)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연구실장이 한반도 비핵화 평화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 신상순 선임기자
김정곤 논설위원의 사회로 김준형(왼쪽) 한동대 교수와 홍현익(가운데)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연구실장이 한반도 비핵화 평화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 신상순 선임기자

장기 교착 국면을 벗어난 북미 비핵화 협상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으로 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밀고 당기기를 하는 과정에서 사랑에 빠져들었다”며 정상 간 담판에 대한 기대감을 잔뜩 높였다. 하지만 북미 사이에는 비핵화 실행조치와 종전선언을 포함한 상응조치의 우선 순위를 둘러싼 기싸움이 여전하다. 북한이 최근 제재완화를 강하게 요구하면서 비핵화 협상은 더 복합해지고 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의 방향성과 전망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7일 4차 방북 결과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한차례 취소됐던 방북이 성사된 것 자체로 의미를 찾을 수 있지만 방북 성과를 장담하기는 이르다. 지난 1일 한국일보와 만난 김준형 한동대 교수와 홍현익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연구실장이 일시와 장소, 의제 등의 변수로 인한 2차 북미 정상회담의 다양한 가능성을 전망했다. 한국일보 회의실에서 김정곤 논설위원 사회로 진행된 좌담에서 두 외교안보 전문가는 “미국의 동의로 연내 종전선언은 가능하겠지만 제재완화까지는 기대하기 쉽지 않다”고 내다봤다.

-9월 중순 평양 공동선언 발표로 북미 비핵화 협상 국면이 크게 바뀌었다. 북미가 협상 채널을 재가동하면서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이 결정됐고 북미 2차 정상회담도 가시화했다. 하지만 두 번째 북미 정상회담에는 여러 조건과 변수들도 기다리고 있다.

홍현익 실장(홍): 정상회담 자체는 분명히 열린다.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예술작품이라고 추켜세우는 트럼프의 반응으로 봤을 때 시간 변수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11월6일 미국 중간선거 전후가 관전 포인트인데 폼페이오의 방북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 같다.

김준형 교수(김): 중간선거 뒤로 밀리면 추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 트럼프가 중간선거에 활용할 거리가 안 나왔거나 내부 반발에 밀린 결과가 될 수도 있다. 대체로 선거 이후로 보지만 그 전에 열리지 말라는 법은 없다.

홍: ‘비핵화가 1년이든 2년이든 중요하지 않다’는 트럼프의 말은 순전히 협상용이다. 초조하지 않다는 걸 얘기하는 전술이다.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가능한 한 빠른 종전선언 합의와 김정은의 서울 답방이 연결되는 게 바람직하기 때문에 10월 북미 정상회담을 바란다.

-북미 정상회담의 장소도 주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미국이 오스트리아 빈을 실무 협상 무대로 제시하면서 유럽이 후보로 떠오르고 미국 영토, 판문점 등도 거론되고 있다.

홍: 빈을 포함한 유럽도 생각할 수 있지만 김정은의 항공편 문제가 우선 해결돼야 한다. 미국 영토이긴 하지만 괌의 경우, 경호하기 수월하다는 점에서 도리어 가능성이 있다. 판문점은 북미 정상회담 이후 종전선언을 할 때 장소로 유용하다.

김: 중간선거 이전이면 미국이 될 가능성이 크고 이후면 판문점이 될 공산이 크다. 트럼프가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좋은 곳은 역시 미국이다. 1978년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캠프 데이비드’ 협정 사례를 감안해도 세계를 향한 평화 메시지의 발신 장소로 미국보다 좋은 장소는 없을 것이다. 중간선거 후라면 판문점이 트럼프에게 정치적으로 더 좋은 그림을 만들어 줄 수 있다.

-북한은 평양 공동선언에서 동창리 미사일 실험장의 전문가 입회 조건 영구폐기와 영변 핵시설의 조건부 폐기를 밝혔는데 미국이 북한의 핵사찰 수용이라고 해석하며 협상 국면이 전개됐다. 이를 두고 김정은 위원장의 +α 메시지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됐을 가능성이 거론됐다. 북미 사이의 물밑 조율 과정을 어떻게 추정할 수 있나.

홍: 트럼프나 폼페이오가 이구동성으로 사찰을 받는다는 얘기를 한 것으로 미뤄,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보낸 친서 중에 사찰을 받는다는 내용이 들어있지 않을까 추정해 볼 수 있다. 가령 종전선언 전에 동창리 실험장을 전문가 입회 하에 폐기하고 종전선언 직후에 영변 핵시설 폐기로 들어간다는 시간표를 제시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다음에는 미국이 바라는 좀 더 가시적인 진전, 가령 장거리 미사일이나 핵탄두의 시범 폐기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미국에 빅딜을 제안하지 않았을까. 트럼프 입장에서는 북한의 비핵화 제안이 언론에 업적으로 자랑할 만한 것이기 때문에 움직인 게 아닌가 생각된다.

김: 동창리 실험장 폐기는 트럼프가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후 ‘미국에 직접적 위협인 ICBM의 폐기’라면서 가장 자랑했던 업적이다. 하지만 회담 이후 미국 내에서 ‘검증이 빠졌다’는 이의가 제기되면서 빛이 바랬다. 전문가 입회 하의 동창리 폐기를 적시한 공동선언은 ‘신고-사찰-검증’이라는 비핵화 프레임 아래서 공격받는 트럼프의 업적을 다시 세워주는 장치로 볼 수 있다. 북한 입장에서 비핵화의 성지인 영변을 내준 것도 트럼프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켜 주는 포석이다. 미국 사회가 요구하는 핵 신고 일부와 트럼프가 좋아하는 과감한 초기 조치를 합쳐서 종전선언을 얻어내고 제재 완화까지 얻어내려고 한 것 같다.

-현재로서는 북한의 종전선언 요구와 미국의 비핵화 우선 이행 주장이 팽팽히 맞서 있다. 비핵화 입구의 난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홍: 미국을 완전히 믿을 수 없는 북한 입장에서는 핵무기의 전모를 공개하면 안보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과거 핵은 후순위가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동창리 미사일 폐기-종전선언-영변 핵시설 영구폐기의 순서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종전선언 직후의 영변 폐기를 보증한다면 트럼프도 종전선언을 받게 되지 않을까.

김: 어려운 문제인데 북한은 미국이 종전선언만 하면 많은 것을 양보할 듯이 주장하고 있다. 과거 핵이나 ICBM을 파기하는 과감한 조치까지 제시한다면 트럼프도 상당한 정치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초기 핵신고의 불충분성을 종전선언 이후 뒷부분의 과감한 조치로 보완하겠다는 콤비네이션이 아닐까.

-종전선언을 두고도 북한은 가벼운 정치적 선언으로 접근하는 반면 미국은 정전협정의 전 단계라서 안 된다는 입장이다. 북미의 이견을 조율할 방법이 있을까.

김: 남북미 3자 정상은 이미 싱가포르 회담 이전에 종전선언을 정치적 선언으로 국한하는 데 동의했다. 아무 문제가 없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이 또한 미국 내부의 반대에 부닥쳐 있다. 다만 북한의 과감한 양보가 있다면 종전선언은 큰 문제가 없다.

홍: 트럼프는 사실 종전선언을 해 주려던 입장인데 국내 여론 주도층이 반대하는 바람에 오히려 북한을 상대로 많은 것을 얻은 셈이 됐다. 그러나 종전선언을 해 봐야 미국이 잃는 게 별로 없다. 때문에 종전선언까지는 쉽게 갈 것 같다. 남북 정상이 평양 공동선언을 통해 사실상 종전을 선언함으로써 종전선언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미국 내 비판론자들의 입지만 크게 위축됐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이미 평화가 왔는데 종전선언이 무슨 대수냐’고 비판론자들을 설득할 근거로 평양 공동선언을 활용할 수가 있었다.

-북한이 최근 제재 완화를 이슈로 꺼내면서 협상의 새로운 변수가 됐다. 미국은 어림도 없다며 요지부동이라 중재자인 문 대통령 입장에선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홍: 북한이 핵을 개발해서 국제사회가 강화한 건 제재였다. 북한이 비핵화로 가면 제재를 조금씩 풀어 주면서 비핵화를 장려하는 게 정상이다. 북한이 비핵화를 하는데도 제재를 안 풀어주면 언젠가 부러질 수 있다. 북한이 비핵화를 멈추고 못하겠다고 버티면 파국으로 갈 수 있다. 문 대통령은 미국에 대북제재의 탄력적 운영을 지속적으로 설득하고 개성공단부터 재개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어떤 정도의 비핵화 수준일 때 개성공단을 재개할 정도의 제재를 풀어줄 수 있는지’를 미국에 확인해서 북한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김: 싱가포르 선언을 보면 1, 2 항은 미국의 이행 부담이고 3, 4항은 북한 몫인데 북한은 미군 유해 송환과 초기 비핵화 조치를 대체로 이행했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말대로 하나도 양보한 게 없다. 트럼프와 세계 여론을 움직여 제재완화를 유도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본다. (우리 정부가 이제) 제재 완화의 로드맵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 역할에서 보완할 대목이 있다면.

홍: 지금까지 상당히 잘 해 왔다. ‘A제로’ 정도는 된다. 우리 스스로 북한의 체제보장과 비핵화를 동시에 병행할 수 있는 일정표와 시간표를 만들어 미국에 보여준 뒤 수정해서 다시 북한에 확인을 거치는 방식으로 보다 능동적 접근을 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북미관계가 언제 어떻게 악화할지 모르기 때문에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김: 중간성적표로 A에 동의한다. 유엔연설까지 모멘텀이 좋았다. 평화가 부재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겠다는 호소로 국제적 지지를 이끌어낸 게 상당한 성과다.

-민주당의 패배가 예상되는 미국 중간선거가 비핵화 협상의 부정적 분수령이라는 지적이 있다.

김: 트럼프 스스로 관심을 잃어버리거나 국제평화를 깨는 방향으로 몰고 가는 상황을 우려할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과거처럼 미국의 압박 제재에 동조하지는 않겠지만 교착 상태가 길어지는 상황도 바람직하지 않다.

홍: 미국이 북한 비핵화를 사실상 포기하고 비확산만 다짐받고 타협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미간 담합이 되지 않도록 우리가 자주적, 능동적 입장에서 중재하고 개입해야 한다.

사회=김정곤 논설위원 jkkim@hankookilbo.com

정리=변한나(논설위원실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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