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전통’에 발목 잡힌 한국 현대공예

입력
2018.10.04 18:39
수정
2018.10.25 15:39
31면

현재 한국 공예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규율은 ‘전통’이다. 전통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구호를 통해 점점 더 영향력을 확고히 하고 있다. ‘전통’과 ‘법고창신’은 마치 진리처럼 읽힌다. 하지만 모든 언어는 그 배경을 통해 이해하지 않으면 도그마에 지나지 않는다.

연암 박지원은 법고창신을 말하며 이렇게 경고한다. “법고를 내세우는 사람은 옛 자취에만 얽매이는 것이 병통이고, 새것을 만들자는 사람은 상도(常道)에서 벗어나는 게 걱정이다.”

필자에게는 연암의 이 글이 마치 21세기의 한국 공예를 보며 쓴 것처럼 느껴진다. 지금 한국 공예의 전통은 옛 자취에 고착된 채 일상과 유리되어 있고, 현대공예는 역사적 맥락에서 벗어나 우리의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들지 못하고 있다. 한국 공예는 왜 이렇게 되었나?

연암은 우려의 목소리를 낸 후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옳단 말인가? 나는 장차 어떻게 해야 하나? 그만두어야 할 것인가?”

한국 공예의 실패는 연암과 같은 고민, 차라리 그만두어야 할 것인가 라는 극단적인 심정에까지 이르는 치열한 고민이 없기 때문이다.

여지껏 공예 관련 기관들이 취한 일반적인 태도는 ‘법고에 기반해 창신한 공예품을 만들어라’이다. 각종 공모의 중요 선발기준은 ‘얼마나 전통을 적용했는가’이다. 이렇게 직접적인 방식이 진지한 고민을 통해 나왔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공예품 역시 창작물이다. 모든 창작은 개인의 자유로운 창조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전통’이라는 확고한 전제가 주어진 상황에서 창조성이 가진 한계는 명확하다.

창조성이란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전범(典範)’을 찾게 된다.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스스로 찾아가게 된 ‘전범’을 통해 법고와 창신은 적절한 자리에서 만나게 된다. 하지만 현재의 한국 공예는 공예가들이 ‘전통’을 스스로 찾게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전통을 강요해 출발하는 방식이다. 정립되지 않은 국내 공예 시장에서 국가나 단체의 지원에 기대는 공예가들은 주어진 몇 개의 도식적인 전통 안에서 갈 길을 모색한다.

결국 전통은 그 전통이 선택된 이유를 상실한 채 형식으로만 남게 된다. 전통의 양식은 당연한 수순으로 ‘장식’의 요소로 변질되고, 전통은 ‘물건’ 안에서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설득하지 못한다.

전통과 현대를 엮으려는 수많은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여지껏 이 시대를 대표할 만한 명품이 없는 이유다. 기관의 서류 속에서만 높은 평점을 받은 그 애매한 공예품들이 시장에서 설 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필자는 ‘전통’이 근대 국가가 형성되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근대의 산물이라는 ‘만들어진 전통(The Invention of Tradition)’의 개념을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지난 백 여년 동안 국가 시스템과 함께 공고히 자리잡은 ‘전통’의 개념은 쉽게 버릴 수도, 버려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국가가 전통을 전달하는 방식이 직접적으로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좀 더 세련되고 유효한 방식으로 바뀌기를 바랄 뿐이다.

필자는 공예를 담당하는 기관과 단체에 충심으로 조언하고 싶다. 전통을 통해 창신하고 싶다면, 창작자들의 창조성이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전통의 ‘아카이브’를 만드는 일이 핵심이다. ‘아카이브’만 제대로 만들어져도 ‘전통의 현대화’란 목적은 유효하게 완성될 것이다.

상황이 열악한 공예인들에게 얼마 되지 않는 지원금과 해외 진출을 구실로 ‘전통’이라는 조건을 강제적으로 삽입하지 않았으면 한다. ‘전통’을 지나치게 강하게 전제한다면, 훗날 기억될 지금 이 시대의 ‘전통’은 없을 것이다. 우리의 의무는 전통을 지키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다음 세대에 거론될 전통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김윤관 김윤관목가구공방 대표 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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