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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을 몽땅 포인트로 받는다면 어떨까.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창비)은 직장 갑질 세태와 일의 슬픔을 ‘웃픈’ 형식으로 제대로 포착한다. 어설프게나마 대강을 옮긴다. 작중 인물인 카드사 직원 이 차장은 회장 심기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좌천된다. 옮겨 간 곳은 카드 프로모션 기획 부서다. 이 차장은 신규카드를 사용하면 포인트를 두 배 적립해주는 새 기획안을 냈다가 회장에게 또 다시 봉변을 당한다. 포인트가 그렇게 좋은 거면 일 년 동안 월급을 포인트로 받으라는 것. 회장 말 한마디에 정말 월급 대신 포인트가 적립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지만, 그 회사에선 사건 축에도 못 낀다.

모멸감도 잠시, 그녀는 “어김없이 날은 밝았고 여전히 자신은 이 세계 속에 존재하며 출근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수용한다. 포인트 현금화 전략을 짠다. 잘 팔릴 법한 물건을 포인트로 주문하고, 뜯지도 않은 채 중고거래 앱에 올려 돈으로 바꾼다. 직원 아이디를 넣어 할인가에 사거나 근무시간에 물건을 주문하는 식으로 ‘환전’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최소화한다. 파워 셀러가 된 그녀의 닉네임은 ‘거북이알’이다. “사실 돈이 별건가요? 돈도 결국 이 세계, 우리가 살아가는 시스템의 포인트인 거잖아요.” 거북이알의 ‘포인트론’이 웬만한 정치경제학 원론을 넘어서는 데다, 그 초라한 유가증권으로 무한 교환가치인 화폐에 맞서는 ‘발칙한’ 저항에서 나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통쾌함을 맛봤고, 당연히 그녀를 응원했다. 그러나 포인트라도 받아야 하는 현실은 언제나 개별자를 압도한다. 저항은 비장하나 실패가 예정돼 있기에 서글프다.

이참에 알랭 드 보통의 동명 에세이를 재독했다. 일의 기쁨을 어디에서 찾는지 궁금해서다. 보통은 “일이 우리에게 사랑과 더불어 삶의 의미의 주요한 원천을 제공할 수 있다는 그 특별한 주장을” 살피려 했단다(‘일의 기쁨과 슬픔’ㆍ이레). 낮선 예술가들과 역사적 사실들, 세밀한 노동과정, 거대한 시스템의 세부구조에 대한 설명이 약간은 흥미로웠지만, 과문한 탓에 일의 무엇이 ‘사랑과 의미, 곧 기쁨의 원천’이 되는지 알기 어려웠다. 대여섯 식구를 먹이려면 하루 동안 참치 15마리를 몽둥이로 때려잡아야 하는 어부 라시드의 고역 정도가 기억날 뿐이다.

일의 사회학 관점에서 보면 장 작가의 단편은 보통의 장편을 단숨에 능가한다. 일은 사회적 관계이니 지배가 작동하는 공간이다. 기쁨과 슬픔은 일하는 자의 주관의 영역을 배제할 수 없으나, 근본적으로는 지배구조가 좌우한다. 임금노동이 아니고서는 삶을 살아갈 대안이 없는 구조, 갑질을 재생산하는 단단한 불공정 하청구조 등. 그 구조는 현실 인물 라시드의 고된 노동보다 허구 인물 거북이알의 환전에서 더 잘 드러난다.

게다가 보통의 에세이는 탐사보도물에 육박하나 어째서인지 비현실적이다. 장 작가의 서사는 허구임에도 현실적이다. 아니 현실이다. 일부 방송사가 드라마 촬영 스태프의 인건비를 상품권으로 지급한 사실이 드러났다. 소설 속 ‘포인트 페이’가 현실 속 ‘상품권 페이’로 고스란히 ‘디졸브’된 셈. 밤샘 촬영을 마치고도 아침 7시까지 현장으로 뛰어가는 제작진들은 자신의 노동을 디졸브 노동이라 부른단다. 화면이 겹치며 넘어가는 디졸브 영상처럼, 노동과 다음 노동이 쉴 새 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쪽잠에 김밥으로 때우는 끼니는 열정으로라도 어떻게든 버틴다 쳐도, 상품권을 받아 들 때의 모멸감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한줌의 자율성도 없는 이들은 우리 사회에선 노동자가 아닌 프리랜서다. 법은 딴전이고 자본은 치졸하다. 땅콩에 물 컵도 모자라 상품권까지 동원하는 갑질 천국. 그 세계에서 노동을 팔아야 하는 우리는 모두 거북이알이다. 일엔, 기쁨 따윈 없다. 구조가 그것을 삭제했기 때문이다. 웃프고 웃프다.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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