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의 시 한 송이] 명함 없는 애

입력
2018.10.04 18:35
29면

중략된 부분을 들려드리면 새벽 네 시 편의점 테이블에 있는 나와 언니의 사연은 보다 명확해져요. 금테 명함을 준 동기들의 얘기에 내내 방청객마인드였던 나는 울렁거려 화장실에 갔어요. “너 술 사주는 자린데 이상한 애들만 왔구나……” “근데 너 그애들 올 때마다 수저 세팅해 주더라, 물티슈까지……너 그런 애 아니잖아” 따라온 언니의 말에 나는 무너졌어요. 나를 알아준 언니 때문이었는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언니도 같이 일어났고, 편의점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신 언니는 대취했지요.

대리 기사가 오자 나를 안아주고 손에 뭔가를 쥐어주고 언니는 떠났지요. 펴보니 오만 원짜리 두 장…….언니……놀라운 것은 오만 원짜리 두 장……더 놀라웠던 것은 나도 모르게 언니의 복을 빌고 있는 나......

“치킨 냄새만 맡으면 왜 난 눈물이 날까, 혼잣말을 하려니까 언니는 엎드린 채로 대답을 해줬어//고마운. 거지. 네가 시키면. 언제든. 오잖아.” 술에 취해 코를 골다가도 이런 말을 하는, 인생이 뭔지를 좀 아는 이 언니, 그래서 오늘 나의 유일한 위안이자 버팀목이었던 이 언니……

말줄임표가 많아진다는 것은 어디를 향해서든 질문이 늘어난다는 뜻이지요. 내일이 와서, 언니도 그 애들과 똑같아라고 따진다면, 언니는 내 마음을 어떻게 그렇게 받니? 너 정말 찌질해졌구나, 그럴까요? 내가 비는 언니의 복이 나의 굴복이라고 생각하면 나는 내가 정말 견딜 수 없고, 마음이라고 받기에는 언니의 금테 명함이 자꾸 겹쳐지니, 명함없는 애라서 정말 내가 꼬인 걸까요?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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