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가 거북이보다 빠르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까... 과학자의 세상보기

입력
2018.10.05 04:40
23면
구독
‘떨리는 게 정상이야’의 저자 윤태웅 고려대 전자공학부 교수는 “답 찾기보다 더 중요한 게 문제 만들기이다. 문제 만들기의 핵심은 질문하기”라고 주장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떨리는 게 정상이야’의 저자 윤태웅 고려대 전자공학부 교수는 “답 찾기보다 더 중요한 게 문제 만들기이다. 문제 만들기의 핵심은 질문하기”라고 주장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읽을 용기가 상당히 필요한 책이다. 저명한 공학 교수가 쓴 데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유클리드 기하학, 미분방정식 등 난해한 용어들이 어렵지 않게 눈에 띄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학 전공자를 위한 책일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만 내려놓으면 누구나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다. 어려운 용어를 몰라도 읽는 데 지장이 없다. 책은 수학(과학)이라는 소재를 이용했을 뿐 정치, 교육, 문화, 역사 등 우리의 일상을 깊게 파고든다. 과학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법이라고 봐도 좋겠다.

저자가 일간지에 실었던 칼럼 등 67개의 짧은 글을 공부, 학교, 세상 등 3부로 나눴다. 개인 성찰에서 시작해 대학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를 되짚고, 사회구성원이자 시민의 입장에서 바라본 각종 사회문제까지 범위를 넓혔다.

수학 개념을 뒤집는 것부터 출발한다. 확고불변의 진리로 여겨지는 수학이 실은 인문학처럼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사유하는 방식 중 하나라고 한다. 수학의 원형을 만든 그리스인이 위대한 이유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데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정해진 답을 맞추기보다 답을 찾아가고, 질문하는 과정에서 깨달음과 성찰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가령 토끼가 뒤늦게 출발해도 거북이를 앞지르는 것을 증명하는 법, 홀수 층에만 서는 엘리베이터가 짝수 층에 서지 않는다는 가설을 입증하는 법 등이다.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 것들에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을 품고 과정을 풀어내면서 성찰이 이뤄진다.

저자가 몸담고 있는 대학 사회에도 성찰은 필요하다. 대학원생의 산재보험 가입 문제, 예비졸업생의 취업 후 수업 처리 문제, 교내 성폭력 문제, 논문 표절 문제 등에 대해 저자는 개인 견해보다 문제가 발생한 과정을 설명하며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과거 이건희 삼성 회장의 명예 철학박사 학위수여식이 일부 학생들의 방해로 이뤄지지 못하자 대학 총장이 나서서 사과를 했는데, 왜 교내 성폭력 피해 학생에게는 사과를 하지 않는지 독자에 되묻는 식이다.


 떨리는 게 정상이야 

 윤태웅 지음 

 에이도스 발행ㆍ284쪽ㆍ1만6,000원 

개인과 학교를 지나 저자의 시선은 세상으로 나아간다. ‘먼저 시민이 되자’라는 제목의 글에서 시민으로서의 과학자 역할을 돌아보는 저자는 나아가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 위헌 판정, 천안함 사건 합동조사단 보고서 결과, 국정원의 대선 불법 개입 문제 등으로 논의를 확장한다.

저자가 결국 하고픈 얘기는 개인 성찰에서 출발해 수평적 소통을 거쳐 민주주의를 제대로 만들자는 얘기다. 이를 위해 수학적 개념을 빌려 반증 가능성을 인정하는 열린 태도, 결과보다는 과정을 따져보는 문화 등이 필요하다는 게 요지다.

목줄 하지 않은 개 주인을 비판하면서 정작 본인은 텀블러에 커피를 들고 버스에 탔던 사실을 털어놓으며 (남에게 피해를 주는지 여부를 입증하기 위해) 텀블러에서 커피가 쏟아질 확률을 계산하는 저자를 따라 할 순 없지만 일상에서 관습적으로 해왔던 생각과 행동의 과정에 오류가 없는지 한번 돌아보게 한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