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다시 광릉 숲에서] 모감주나무와 만병초

입력
2018.10.02 11:08
수정
2018.10.02 14:06
25면
모감주나무 사진 임형호
모감주나무 사진 임형호

우리 민족이 가장 사랑하는 소나무,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오래 사는 주목, 우리나라 특산수종인 구상나무 등이 함께 경쟁하는 후보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지난달에 있었던 평양에서의 남북정상회담 기념식수나무 말입니다. 그 쟁쟁한 나무들을 물리치고 모감주나무가 심겨지는 모습을 보았을 땐 절로 얼굴에 미소가 퍼지더라구요. 모감주나무를 생각하며 가장 먼저 떠오른 모습은 주변이 환해지도록 나무 가득 피어나는 밝은 노란색의 수많은 꽃송이 들이었습니다. 설레던 봄꽃들은 허무하게 사라지고,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즈음 피어나는 모감주나무 꽃들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걱정을 거두어내고 행복한 마음을 들게 하니 참 좋은 나무입니다. 온 국민이 알게 된 이 나무의 영어이름에는 골든 레인 트리(Golden Rain Tree)가 붙여져 있습니다. 줄지어 있는 모감주나무 무리를 보시면 정말 황금빛 비가 내리는 듯도 하니 우리 함께 잘 살 수 있는 번영을 상징하는 의미에 동감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쯤 붉은빛이 도는 갈색으로 여물어가는 열매도 의미를 보탤 수 있습니다. 보기에 따라 열매는 주머니처럼 생겼으니 복과 성과들을 가득 가득 담는다고 말할 수 있고, 초롱처럼 생겼다고 본다면 미래를 밝게 밝힌다고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열매의 주머니를 벗기고 나면 씨앗이 드러납니다. 이 씨앗을 모아 염주를 만들어 염주나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셨죠? 염주는 욕심을 내어 놓고, 마음을 다스리며 무엇인가를 염원하고자 할 때 쓰는 것이고 잘 자란 나무 한 그루에 달리는 이 염주 알의 숫자는 4,000~6,000개에 이른다고 하니 평화와 번영을 바라는 수많은 국민들의 마음이라고 해도 될까요? 모감주나무의 가장 아름다운 자생지는 안면도 해안입니다. 귀한 분포라 천연기념물 138호로 지정되었으며, 완도, 포항에 이어 월악산 그리고 압록강 하구와 황해도에 분포했던 기록이 있어 학자들은 북반구 온대수종인 이 나무가 자연상태에서 해류와 새들에 의해 종자가 분산되면서 분포영역을 확장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서해에서 남해와 동해로 한반도와 이를 둘러싼 바다로 연결되고 발전한다는 의미를 붙이고 싶었습니다.

노랑만병초 사진 양형호
노랑만병초 사진 양형호
노랑만병초 군락 사진 양형호
노랑만병초 군락 사진 양형호

이번에 천지에서 언급되어 유명해진 또 하나의 나무가 있는데 바로 만병초입니다. 높은 곳에서 크지 못하고 오래 자라다 보니 만병을 고치는 풀이라는 뜻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지만 나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만병초에는 희거나 연한 분홍빛 꽃이 피는 그냥 만병초와 가장 높은 수목 한계선위에서 분포하며 연한 노란색꽃을 피우는 노랑만병초 두 가지가 있습니다. 백두산에는 두 종류의 만병초가 다 자라지만 천지주변에 주로 분포하는 것은 노랑만병초입니다. 남쪽에서는 설악산 중청봉에 자랍니다. 백두산엔 아직 잔설이 녹지 않은 6월이면 그 어떤 두메양귀비나 구름국화, 가솔송같은 고산식물들이 꽃방석을 이루기전 노란만병초가 먼저 군락을 이루며 피어나 장관을 이룹니다.

만병초 사진 양형호
만병초 사진 양형호

만병초 종류들은 넓은잎을 가지면서도 상록성입니다. 가장 춥고 모진 환경을 가진 백두산 천지의 겨울을 푸르게 견뎌내고 참으로 아름다운 꽃들을 피워낸다는 것은 역경 속에서도 하나씩 극복하고 나아가야 할 우리의 오늘 같아 이 나무 또한 마음이 가더라구요. 두 나무의 의미 부여가 다소 과하다 생각되더라도 청명하고 아름다운 이 가을처럼 모두가 풍성하고 평화로고 아름답기를 바라는 간절함 때문으로 이해해주세요.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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