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철의 사색] 데자뷔?

입력
2018.09.30 10:22
수정
2018.11.08 15:18
30면

북핵 덕 지지회복에도 민생은 계속 문제

민생문제와 정부대응 노무현시절 생각나

초심으로 돌아가 몸낮추고 심기일전해야

천만다행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교착상태에 빠졌던 북핵문제가 다시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추락하던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등했다. 그러나 아직도 문제는 산재되어 있다. 그 핵심은 민생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최근 가장 많이 떠오르는 단어는 불행히도 데자뷔이다. 촛불덕분에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처음에는 순항하는 듯 했으나 여러 면에서 급속히 지지를 잃으며 고립됐던 노무현 정부를 닮아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한다.

노무현 정부가 무너진 것은 양극화와 집값폭등 등 민생 때문이다. 보수세력이 엉뚱하게 좌파라고 비판하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성장면에서는 오히려 보수정권들보다 좋은 성과를 냈다. 그러나 1997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를 적극 수용하면서 분배에 실패해 지지기반이 되야 할 서민층을 중심으로 박정희 향수와 보수세력에 대한 묻지마 지지를 가져왔다. 박근혜의 집권도 그 결과다. 사실 트럼프가 집권하고 유럽에서 극우파가 급성장하고 있는 것도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따른 양극화와 민생위기의 결과이다. 그러하기에, 나는 촛불 당시 “설사 촛불이 성공하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더라도 민생과 헬조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박정희 향수는 다시 살아나고 ‘홍럼프’ 같은 한국판 트럼프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또 문재인 정부의 과거청산에 대해서도 이를 지지하면서도 민생이 잘못되면 또 다시 정권을 잃고 과거청산은 다시 되돌려질 것이기 때문에 “최고의 과거청산은 민생”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문재인 정부는 세가지 측면에서 노무현 정부와 다르다. 첫째, 박근혜 정부와 촛불혁명의 경험이다. 박근혜가 워낙 막장 드라마를 연출했기 때문에 문 대통령은 웬만큼만 해도 지지를 받을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촛불혁명의 든든한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다. 둘째, 문 대통령의 겸손하고 소통하는 리더십이다. 이는 박근혜의 불통의 리더십, 정제되지 않은 언행으로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켰던 노 전 대통령의 전투적 리더십과 구별되는 현 정부의 중요한 자산이다. 셋째, 노무현 정부는 핵심참모가 양극화 해소는 선거 공약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를 해소하지 못한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할 정도로 임기 후반 전까지는 민생문제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지 못했다면, 문재인 정부는 이를 아주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주위 환경도 도와주고 있다. 북핵문제가 전면화되면서 그 동안의 보수세력과 차별화된 평화정책으로 지지를 얻기에 유리해졌다.

그러나 이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노파심인지 모르지만, 최근의 경제 지표들과 집값폭등, 이에 따른 지지율의 급락 등을 보고 있노라면 자꾸만 노무현 정부가 떠오른다. 많은 논쟁이 필요한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성장의 문제는 지면관계상 논외라 하더라도 집값문제는 답답하기만 하다. 최저임금을 설사 만원이 아니라 2만원으로 올린들 집값이 미친 듯 뛰는데 무슨 소용이 있는가? 보수정권인 노태우 정권도 투기에 의한 불로소득을 잡기 위해 “혁명을 막기 위한 혁명예방적 조치”라며 혁명적인 토지공개념 정책들을 내놓았었다. 헌데 촛불 덕으로 출범한 정부의 대응은 너무 굼떠서 뒷북이나 치고 있고 사태의 심각성에 비해 이에 상응하는 비상함도, 충격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서울시장이라는 사람이 부동산의 광풍 속에 용산과 여의도 전면재개발 계획을 발표해 집값폭등을 부채질하니 할 말이 없다. 그 뿐인가? 대통령이 겸손하고 소통하는 자세로 따놓은 지지를 측근들이 다 까먹고 있다. 이 난리통에 핵심 경제참모가 “모든 사람이 강남에 가서 살 이유가 없다”고 서민들의 가슴에 못질을 하는가 하면 집권당 대표는 50년 집권을 떠들고 다니니 노무현 정부가 민심과 동떨어진 오만한 언행으로 지지를 잃어버린 것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정부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촛불의 초심으로 돌아가 정책을 세우고 겸손해져야 한다. 과거청산도, 북핵도 민생을 대신할 수는 없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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