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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전후해 신문 칼럼과 SNS에서는 반골들의 거침없는 주장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어느 일간지에 게재된 김영민 교수의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라는 칼럼은 압권이었다. 추석에 듣기 싫은 질문을 받았을 때의 대처법에 대한 조언이었다. 가령 당숙이 “언제 취직할거니”라고 물으면 “곧 하겠죠”라고 얼버무리지 말고 “당숙이란 무엇인가”라고 말하고, “추석 때라 물어보는 거란다”라고 하거든 “추석이란 무엇인가”라고 말하고, 엄마가 “언제 결혼할거니”라고 물으면 “결혼이란 무엇인가”라고 응대하라는 등의 내용이다. 다시 읽어 봐도 사이다 같이 시원한 글이었다. 명절 때면 쉽게 볼 수 있는 익숙한 풍경이지만 당사자는 심한 마음의 상처를 받는 불편한 상황들이다. 평소에는 아무 말 없다가 왜 꼭 명절 때만 되면 친척들은 극성스럽게 남 걱정을 하는 걸까. 인터넷에는 ‘추석 남 걱정 메뉴판’까지 등장했다. 저의 걱정은 유료 판매하니 구입 후 이용해 달라는 친절한 안내와 함께 말이다. “대학 어디 지원할 거니?”라는 질문은 5만원, “살은 언제 뺄래?”는 10만원, “결혼은 언제 할 거니?”는 30만원, “너희 애기 가질 때 되지 않았니?”는 50만원으로 가격이 매겨져 있다. 촌철살인의 위트가 담겨 있지만 질문 테러에 시달리는 입장이라면 웃고 넘길 유머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차례상이 가짜 전통이라는 기사도 있었다. 차례(茶禮)는 글자 그대로 조상께 정성껏 차를 올리는 예법인데도, 여전히 차례상은 홍동백서, 조율이시를 따지고 온갖 과일과 음식으로 뻑적지근하게 상을 차린다는 것이다. 율곡 이이가 제례에 대해 서술한 ‘제의초’에 차례에는 떡과 과실 두어 가지면 된다고 썼다는 내용도 소개했다. 유교의 본산 성균관도 차례는 기제사와 달리 많은 음식을 올리지 않고 술은 한 잔 만 올리며 축문도 안 읽는다는 입장이다.

좋은 전통은 응당 지키고 보존해야 할 민족의 자산이다. 하지만 전통이 불편함과 상처를 안겨준다면 고집스럽게 고수할 이유는 없다. 더군다나 고부갈등, 세대갈등을 일으키는 인습이라면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 뭔가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보통 우리가 택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냥 하던 대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늘 하던 대로 하면 그게 잘못돼도 잘못됐다는 생각조차 못한다. 지금 명절이 그렇다.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데 명절 풍경은 가장 느린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초연결, 초지능으로 세상이 격변하는 이른바 4차 산업혁명시대를 살고 있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사이버와 물리세계가 융합되고 있다. 시공의 한계를 넘어 멀리서도 온라인으로 실시간 소통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명절은 여전히 아날로그를 철저히 고수하고 있다. 예컨대 사이버 제사상, 원격 명절 모임은 왜 안 되는가. 이제 우리는 도대체 명절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명절을 정의해 보자는 게 아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은 인생의 뜻을 묻는 게 아니라 인생의 목적은 뭐고 어떻게 사는 게 바람직한가를 묻고자 함이다. 명절의 목적과 바람직한 명절상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추석, 설 등 고유의 민속명절은 멀리 있는 가족, 친척, 친지가 모여 조상을 기리고 함께 음식을 먹고 대화하며 즐기는 세시 풍속이다. 특히 핵가족화 된 오늘날, 명절에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은 좋은 전통이다. 모여서 조상을 생각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게 목적이라면 그 목적에 충실하면 된다. 친척 어른이 손아랫사람에게 불편한 질문을 하며 상처 주는 일, 예법에 맞지 않게 다 먹지도 못할 과다한 음식을 차리는 차례상, 며느리에게만 과다한 노동을 강요하는 구시대적인 문화 등은 당연히 고치고 바로잡아야 할 생활 속 적폐다.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과학문화협력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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