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서 채소 키우기로 도시와 농촌 벽 허물어요”

입력
2018.09.30 18:0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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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연 엔씽 대표가 서울 서초구 잠원동 본사 사무실에서 여러 개를 연결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듈형 수경재배 키트 '플랜티 스퀘어'를 설명하고 있다.
김혜연 엔씽 대표가 서울 서초구 잠원동 본사 사무실에서 여러 개를 연결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듈형 수경재배 키트 '플랜티 스퀘어'를 설명하고 있다.

엔씽은 도시와 농촌의 경계를 허무는 기업이다. 농업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 도시 농부를 꿈꾸는 누구나 손쉽게 작물을 재배할 수 있게 해준다. 텃밭을 찾아 도시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다. 엔씽의 수경재배 키트 ‘플랜티 스퀘어’나 컨테이너형 스마트팜 ‘플랜티 큐브’를 사용하면 작물 재배에 대한 전문 지식이나 노하우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도 간단한 채소 키우기부터 소규모 농업까지 시도해볼 수 있다.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해 멀어진 도시와 농촌 사이의 간극을 첨단 기술이 다시 좁히고 있는 셈이다.

4년 전 엔씽을 설립한 김혜연 대표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고교 시절부터 창업을 꿈꿨던 그는 홈페이지 동아리를 만들어 홈페이지 제작으로 용돈을 벌었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던 시절에는 부업으로 홈페이지 제작을 하다 연예 매니지먼트사에서 로드 매니저로 일하기도 했다.

농자재 회사를 운영하는 삼촌을 도와 우즈베키스탄에 토마토 농장을 만든 적도 있다. 한국에 돌아와 모바일 기기용 어플리케이션(앱)으로 창업에 나섰다가 전세금을 날리기도 했다. 한국전자부품연구원에서 사물인터넷(IoT) 플랫폼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험도 있다. 김 대표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농장을 만든 뒤 한국전자부품연구원에서 IoT 플랫폼을 연구하며 농장에 IoT 플랫폼을 적용해 운영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학생 신분으로 처음부터 대규모 농장에 도전하는 것은 무리라고 여긴 김 대표는 ‘가장 작은 단위의 농업부터 시작하자’면서 화분을 떠올렸다. 학교 친구들과 힘을 모은 그는 스마트폰 앱과 센서를 통해 원격으로 화분 상태를 파악한 뒤 물을 주거나 온도, 습도를 조절할 수 있는 스마트 화분으로 2013년 정부와 구글이 공동 주최한 ‘글로벌 K-스타트업’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당시 받은 상금 4,000만원은 이듬해 엔씽을 설립하는 밑거름이 됐다. 엔씽은 2015년 미국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 스마트 화분을 출시해 10만달러를 벌어들이기도 했다. 현재 엔씽의 주력 상품 중 하나인 플랜티 스퀘어는 스마트 화분에서 IoT 기능을 뺀 수경재배용 모듈형 미니 화분이다.

엔씽이 좀 더 무게를 두는 것은 빌딩형 수직 농장인 버티컬 팜 ‘플랜티 큐브’다. 작물을 심은 선반 모양의 화분을 여러 층으로 쌓아 좁은 공간에서도 대량 재배하도록 한 것인데, 컨테이너 곳곳에 설치된 센서와 IoT 플랫폼이 내부 온도, 습도, 조도, 이산화탄소 농도 등을 측정ㆍ분석해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준다.

김 대표는 “파종과 수확을 제외한 나머지는 소프트웨어가 도맡아 하기 때문에 노동력을 크게 들이지 않고도 기후나 계절과 관계 없이 연중 균일한 환경에서 무농약으로 고품질 채소를 재배할 수 있다”며 “올해 폭염이 지난 뒤 플랜티 큐브를 찾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플랜티 큐브 조성 비용은 컨테이너당 5,000만원 수준이다. 엔씽은 ICT를 활용한 스마트팜 개발은 물론 농작물 판로 확보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창업 후 1, 2년간 매출 실적이 미미했던 엔씽은 이후 매년 2배 이상 급성장하고 있다. 올해 매출 목표는 30억원이다. 농가와 영농법인 외에도 식자재를 직접 재배하려는 병원, 학교, 호텔 등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어 향후 전망은 밝은 편이다. 올 3월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 처음 조성한 플랜티 큐브 버티컬 팜은 하반기부터 경기 화성시를 시작으로 점차 늘려갈 계획이다. 덴마크의 한 호텔 업체가 지난해 실험 단계였던 컨테이너 두 동 분량의 플랜티 큐브를 사간 뒤 엔씽의 스마트팜에 관심을 보이는 해외 업체도 점점 늘고 있다.

엔씽은 당분간 버티컬 팜 분야에 사업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글로벌 시장을 놓고 볼 때 쌀이나 밀, 옥수수 등을 키우는 대규모 농장이나 비닐하우스 같은 시설원예 분야에서 해외 선진국 업체들과 경쟁하긴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김 대표는 “농업 강국인 네덜란드에 스마트팜을 수출해보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엔씽의 자랑거리는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소프트웨어다. 농장 운영, 작물 생산, 유통ㆍ판매 등과 관련한 소프트웨어를 통합해 플랫폼 회사가 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김 대표는 “원래는 스마트팜 운영 시스템만 개발하려 했으나 그에 맞는 하드웨어가 없어 플랜티 큐브를 개발하게 됐다”며 “하드웨어는 모방할 수 있지만 작물 재배 관련 각종 데이터와 IoT 플랫폼, 운영 시스템 등 엔씽 만의 소프트웨어는 따라 하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글ㆍ사진=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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