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줄고 집값 급등… 무주택 실수요자도 직격탄

입력
2018.09.28 04:4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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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투기세력과 묶어 규제 

 LTV 40%인데 집값 20%↑ 

 서민 정책대출도 현실과 괴리 

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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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적 다주택자를 잡겠다는 취지와 달리 정부의 대출규제 강화 조치로 무주택 실수요자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가 투기세력과 실수요층을 세심하게 구분하지 않고 뭉뚝한 규제책을 쏟아낸 탓에 신규 대출 문턱은 높아지고 집값은 집값대로 오르면서 서민 실수요자 자격을 갖춰도 집을 마련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27일 부동산업계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8ㆍ2 부동산 대책을 통해 서울 전 지역과 세종, 경기 과천ㆍ분당ㆍ광명ㆍ하남시, 대구 수성구를 투기지역으로 묶고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기존 집값의 60%에서 40%로 대폭 줄였다. 다만 정부는 이들 지역에서도 부부 합산 연소득이 7,000만원 이하이면서 사려는 집이 5억원 이하인 무주택 가구에는 담보인정비율(LTV)와 총부채상환비율(DTI)를 각각 10%포인트 높여주는 예외를 뒀다.

그러나 이후 해당 지역 집값이 급등하면서 서민 실수요자 기준을 충족하기가 쉽지 않아졌다. 본보가 부동산114에 의뢰해 최근 1년 새 서울 시내 5억원 이하 아파트 비율 추이를 따져본 결과 8ㆍ2 대책 발표 시점인 지난해 8월엔 서울 아파트의 절반(50%)이 5억원을 밑돌았지만 올해 8월엔 이 비율이 39%로 11%포인트 내려갔다. 이 기간 서울 지역 집값이 20% 넘게 오른 여파다. 정부는 서울을 비롯해 투기지역으로 묶인 곳이라도 실수요자에 대해선 대출 규제를 완화해 주택 마련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해왔지만 상당 부분 빈말이 된 셈이다.

서민 실수요자를 위한 정책대출 역시 현실에 맞지 않긴 마찬가지다. 보금자리론, 디딤돌대출, 공유형 모기지 등 이들 정책 대출상품은 강화된 대출 규제를 적용 받지 않아 상품별 자격조건에만 부합하면 투기지역인 서울에서도 집값의 70%까지 대출받는 게 가능하다고 정부는 설명해왔다.

하지만 실수요자 입장에선 이들 상품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대출금리가 연 2%대로 저렴한 디딤돌대출의 경우 미혼 세대주라면 서울에서 이 상품을 이용해 아파트를 사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 무주택 부부는 집값 5억원 이하 주택에 대해 대출을 받지만 미혼 단독세대주(만 30세 이상)는 3억원 이하 주택 구입 때만 대출이 가능하고, 무주택 부부에겐 2억원인 대출한도 역시 미혼 세대주에겐 1억5,000만원으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대출한도가 3억원으로 가장 많은 보금자리론은 6억원 이하 주택을 대출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정작 서민 실수요자 자격을 인정 받으려면 5억원 이하 주택을 골라야 한다. 마포구에 사는 직장인 황준원씨는 “연소득 기준을 충족해도 집값이 뛰어 서민 실수요자 자격으로 대출을 받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더구나 정부는 다음달 대출 규제의 최종판으로 꼽히는 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 제도를 1년 유예기간을 마치고 공식 도입한다. DSR는 대출 신청 가구가 보유한 모든 대출의 원리금 상환액 합계를 연소득과 비교해 대출한도를 정하는 방식이다. 서민 실수요자 여부와 무관하게, 이미 신용대출, 전세대출을 받아 상환 중인 사람이라면 앞으로 주택대출 한도가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주택 공급 확대 정책도 실수요자가 체감하기엔 상당히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실제 이명박 정부 시절 반값에 집을 공급한다는 취지로 추진한 보금자리주택 역시 정책 발표 이후 공급까지 5년 이상이 걸렸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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