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잘 표현된 진실’을 위한 다른 목소리

입력
2018.09.26 20:00
30면

 비슷한 배경, 생각을 공유하는 뉴스룸 

 관행적 취재, 관성적 기사생산 되풀이 

 채용ㆍ조직문화 혁신없이 미래도 없다 

얼마 전 개인 페이스북 계정에 ‘성차별적 질문 여전한 언론사 면접’이란 글을 띄웠다. 기자 지망 여대생들과의 만남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귀를 의심할 만한 사례도 있었다. 어느 신문사의 기자 공채 조별 면접에서 한 면접관이 여성들에게만 “취재원이 특종을 줄 테니 술 마시러 나오라는데 집에서 아기가 아파서 울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묻더라는.

“주 6, 7일 근무에 잦은 야근과 술자리 쫓아다니느라 바쁜 엄마 탓에 아파도 할머니나 이모 품에 안겨 울어야 했던 큰딸이 자라, 내가 기자로 첫 발을 뗀 딱 그 나이가 됐다. (중략) 저 유치하고 비윤리적이고 인재 판별에는 아무 쓸모도 없는 ‘여자가···’ 같은 질문이 좀비처럼 끈질기게 살아 떠돌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분노를 거칠게 발산한 이 글은 별 인기 없는 내 페이스북 포스팅 사상 최다 공감 및 공유를 기록했다.

이 익숙하면서도 낯선 경험은 속으로만 곱씹던 오래된 질문을 끄집어냈다. 기자의 자질이란 무엇인가. 족히 책 한 권은 쓸 법한 주제이나, 더러 대학의 저널리즘 수업이나 중ㆍ고교 직업체험 특강에 초청받아 강의할 때 나는 남이 가르쳐줄 수 없는 필수 자질로 딱 두 가지를 들곤 한다. (좋은 질문을 끈질기게 이어갈 수 있는) 세상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과 (기사를 정확하고 매력적으로 전달하는) 스토리텔링 능력. 미디어 환경 급변에 따라 다양한 능력이 부가되고 ‘이 바닥의 미친 속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한 직업윤리가 새삼 강조되지만, 저 두 가지만 제대로 갖추면 웬만한 과제들은 감당할 수 있다고 나는 믿어왔다.

기자 개인의 자질만 놓고 보면 저 믿음은 유효하다. 그러나 언론사 조직, 더 넓게는 언론계 전체로 지평을 확장하면 오만하거나 아둔한 믿음이라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사회가 변해도 언론의 존재 이유는 구성원들에게 신뢰할 만한 사실과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 모색의 공론장 역할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언론이 위기를 말하면서도 세상 변화를 읽고 스스로 변화하는 데 거듭 실패한다면 기자들이 아니라 언론조직의 무능과 게으름을 탓해야 하지 않을까.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편집국장 캐서린 바이너가 지적한 ‘사회를 반영하는 대표성의 결여’ 말이다.

바이너는 지난해 11월 ‘위기의 시대 저널리즘의 사명’이란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해 자신의 목소리가 들려지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잃어가고 있는 이때에 언론은 그런 소외감을 반전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중략) 그러려면 우리 스스로 사회를 더 잘 대표하도록 구성돼야 한다. 협소한 배경을 가진 이들로만 구성된 언론사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뉴스라고 여기는 이슈들을 알아채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면접에서의 성차별 질문에 분노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채용 단계부터 ‘성차별 거름망’이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는 현실(사실 드러난 질문보다 더 나쁜 건 드러내지 않은 채 교묘하게 작동하는 성차별 인식이다)에서 언론이 미투(Me too) 운동을 비롯한 젠더 이슈를 공정하고 깊이 있게 다루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성비만 문제가 아니다. ‘서오남’(서울대 출신 50대 남성) 중심의 대법관 발탁을 비판하지만 언론사 간부들도 SKY 출신 50대 남성들이 절대다수고, 젊은 기자들도 소위 학벌 좋은 중산층 이상이 절대다수다. 교육 기사 대부분이 대학입시에 초점을 맞추고, 진보언론마저 ‘강남엄마’ 담론을 복제 재생산하는 현실은 ‘협소한 배경의 언론사 구성’과 과연 무관할까.

언론 사명을 누군가는 ‘잘 표현된 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려면 언론사 조직부터 사회를 잘 대표하도록 구성해야 한다. 갈수록 대기업을 닮아가는 절차만 까다로운 채용 시스템부터 버려야 한다. “우리는 다른 기사를 찾아내고, 다른 직감을 갖고, 다른 통찰력을 얻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말없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주고, 소홀하게 다뤄진 지역과 주제를 다뤄야 한다.” 바이너 국장의 호소에 언론의 미래가 있다.

이희정 미디어전략실장 ja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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