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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잿빛 도시는 옛말... 10여년 만에 형형색색 생기 넘쳐

평양 시내 대표적 주거지역인 ‘동대원 구역’ 당창건기념탑 일대의 2005년 모습(왼쪽)과 지난 11일 동일한 지역을 촬영한 모습이 대조적이다. ‘잿빛 도시’ 평양의 놀라운 변화상을 두고 김정은 정권의 체제 선전용이라는 해석도 있으나 김정은 집권 이전인 2000년대 이후 꾸준한 도시 개발과 정비가 이루어진 결과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지닌다. 평양=한국일보 자료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2005년 동일 지역의 건물들이 무채색 일변도 모습을 띠고 있다. 평양=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정일 집권기인 2009년 같은 지역의 일부 건물에 채색이 이루어져 있다. 평양=한스자이델재단 제공
지난 11일 같은 지역의 모습은 과거 모습과 확연히 구분된다. 평양=로이터 연합뉴스
동일한 지역을 보다 넓게 담은 모습으로 시기별 차이가 뚜렷하다. 위에서부터 무채색 일변도인 2005년, 일부 건물이 도색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2009년, 지난 11일 모습. 평양=한국일보 자료사진, 한스자이델재단 제공, 타스 연합뉴스.
2007년 4월(왼쪽) 평양역 주변 모습과 2018년 4월 모습이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평양=한국일보 자료사진
2003년 12월(위)과 지난 11일(아래) 평양 시내의 동일한 건물을 촬영한 두 장의 사진이 그간의 변화를 한눈에 보여준다. 과거 허름한 회색 콘크리트 건물이 산뜻한 붉은색 계통으로 칠해졌고, ‘조선의 심장 평양’이라는 대형 선전 문구도 사라졌다. 평양=한국일보 자료사진, 타스 연합

살구색, 겨자색, 녹청색… 다양한 파스텔 톤 색으로 단장한 아파트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동화 속 도시를 현실로 옮겨놓은 듯한 이곳은 평양 시내 대표 주거 지역인 ‘동대원 구역’ 일대. 알록달록 산뜻함을 입은 이 도시가 평양이라니.

숨 막히는 ‘잿빛 도시 평양’에 익숙한 우리는 최근 드러난 평양의 변화가 놀라울 따름이다. 2005년 동일한 지역을 촬영한 사진 속에서 건물 대부분이 무채색을 띠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건물의 외벽뿐 아니라 내부 인테리어에 적용한 색상 역시 다채로운 것을 알 수 있다. 새로 수리한 대형 음식점부터 체육관과 대학 강의실, 심지어 노동당 대회가 열리는 강당까지 하늘색과 핑크색이 찬란하다. 화려하면서도 은은한 색의 향연은 거리를 달리는 전차와 승용차, 택시에서도 이어지고 무채색 작업복을 입은 공장 노동자들은 원색의 앞치마와 두건으로 색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지난 4월 ‘남북평화 협력 기원 평양 공연’을 다녀온 연예인이나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수행한 정치인들 역시 방북 소회의 일성으로 화려해진 ‘평양의 색’을 언급했다. 투박한 체제 선전 구호와 거대 조형물이 거리를 압도하던 평양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2015년 패키지 관광으로 평양을 둘러본 영국의 디자인 평론가 올리버 웨인라이트는 본인이 쓴 책 ‘인사이드 노스 코리아(Inside North Korea)’에서 “이 도시를 걷는 것은 무대 세트를 통과하는 것 같다. 유치원을 연상시키는 파스텔톤 색채 속에 머무르면 체제의 고통과 신념은 가려질 것”이라고 밝혔다. 평양의 색에서 김정은 체제를 유지하고 공고히 하려는 의도가 묻어난다는 주장이다.

건물 외벽뿐 아니라 내부도 색상이 다채롭다. 지난 2016년 5월 당, 국가, 경제, 무력기관일군 연석회의가 열린 회의장의 커튼은 분홍색, 의자는 초록색이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지난 7월 ‘전국 학원 원아들의 체육경기'가 열린 평성중등학원 체육관 내부도 온통 파스텔톤이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2016년 5월 평양 김정숙 섬유공장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샛노란 스카프를 쓴 채 작업을 하고 있다. 평양=로이터 연합뉴스
2012년 4월 평양의 한 섬유공장에서 진분홍 앞치마와 두건을 두른 노동자가 웃으면서 작업하고 있다. 평양=AP 연합뉴스
지난달 3일 대동강 유람선 ‘대동강호’ 승무원들의 발랄한 유니폼 색상이 은은한 유람선 인테리어 색상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채도가 높은 원색에 비해 차분하고 안정된 느낌을 주는 파스텔 톤으로 주민들에게 현 체제의 편안함과 만족감을 세뇌시키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이 같은 해석에 따르면 평양 시내의 건물의 다양한 색깔은 3대째 권력을 세습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민들의 불평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고안한 고도의 심리 전략일 가능성이 크다.

과연 평양의 변화는 김정은 집권 이후 체제 선전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만들어진 작품일까. 국내 북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강주원 서울대학교 북한생활문화연구단 전임교수는 “김정은 체제 이후 북한이 급속도로 변했다는 시각은 틀렸다. 오히려 2000년대부터 북한의 사회, 경제가 서서히, 꾸준하게 변화, 발전해 왔다는 것이 관련 연구자들의 결론”이라면서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10년간 우리가 완전히 놓치고 있던 사실들이 최근 교류 활성화에 힘입어 뒤늦게 알려지고 있을 뿐”이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김정은 집권 전인 2009년 촬영한 동대원 구역 사진을 보면 일부 건물이 핑크와 연녹색으로 칠해져 있는 등 4년 전에 비해 변한 것을 알 수 있다. 강 교수는 “대북 제재 속에서도 변화의 흐름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정권의 자체 동력 외에도 주거 및 여가 트렌드에 대한 주민들의 자발적 요구와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진단했다.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 ‘북한 도시 읽기’를 펴낸 임동우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는 평양의 변화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측했다. 임 교수는 “평양은 그동안 남북관계와 무관하게 발전해 왔다. 시장경제 확대로 자본가 계층이 늘어나고, 이들이 사회 불만 세력으로 자리 잡지 않기를 원하는 정권과의 역학 관계가 형성되면서 지속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이 같은 발전과 변화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평양이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텅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시각에 대해 임 교수는 “특정 프레임에 갇힌 미디어를 통해 전해진 이미지만으로 그 이면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 평양도 사람 사는 도시”라고 말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수행한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방북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우리가 북한을 그동안 너무 몰랐구나 하는 반성도 들었다. 북한의 모습이 그전에는 어땠고 실제로 어떤지 우리가 과연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에 의문을 남기고 싶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2016년 9월 평양 시내를 운행하는 전차 차체가 분홍과 자주색 계열로 도색되어 있다. 평양=AP 연합뉴스
2012년 4월 평양 시내에서 노란색 차량이 연녹색과 분홍색으로 각각 도색된 건물 앞을 지나가고 있다. 평양=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18일 전차가 외벽이 분홍색으로 칠해진 상점 건물 앞을 지나가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2005년 10월 대동강변(위)과 지난 11일 대동강변 모습. 평양=한국일보 자료사진, 타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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